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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06. 2024

당신은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오

Tú eres la música que tengo que cantar

    2016년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올해 시즌 4까지 방영을 이어온 <팬텀싱어>라는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이 방송을 보며 우리나라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장르별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성악가 존노와 소리꾼 고영열이 쿠바노래 <Tú eres la música que tengo que cantar(당신은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오)>를 부른 듀엣 무대다. 판소리 하는 소리꾼과 성악가가 쿠바의 보사노바를 부른다니. 정말 어색한 조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역시 세계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조금씩 다른 형태로 존재하지만 언어와 표현방식은 달라도 감정은 통한다. 음악으로.

    방송에서 그들이 노래하는 영상을 보다 보면 내 마음속에서 환상적인 감동이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노래하는 고영열과 존노의 벅찬 표정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이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 중 하나를 꼽자면 '벅참'을 들 수 있겠다. 노래는 비장하게 시작한다. 첫 부분만 들으면 뭔가 사연이 있는 슬픈 노래 같다. 원곡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는 오래된 음악을 듣는 운치를 더한다. 단조의 어둡고 비장한 부분이 계속되다가 Por eso, yo(그러므로)라고 솔라시도~ 로 올리더니 갑자기 밝은 장조로 바뀌어 듣는 사람에게 한줄기 빛을 내려준다. 구름사이에 숨어있던 해가 잠시 후 구름을 걷어내고 빛나는 햇살을 내려주는 것이 느껴진다. 해가 서서히 질 때쯤 찐득한 여름 땀이 저녁 바람에 말라갈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떨까.



    

   이 노래의 원곡을 잘 들어보면(맨 아래 링크) 밝아지는 부분에 보사노바 느낌이 난다. 보사노바는 특유의 잔잔하고 흔들거리는 리듬과 베이스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아래 악보는 후렴구 'Por eso, yo(그러므로)'의 베이스 선율이다. 4분의 4박자, 즉 한 마디 안에 4분 음표가 4개 들어가는 박자로 되어있으며, 동그라미 1, 2, 3, 4로 박자를 표시해보면 첫마디의 음표가 숫자와는 조금 어긋나게 되어있어 느슨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걸음걸이로 생각하면 쉽게 연상할 수 있는데, 박자에 맞춰서 헛둘헛둘 걷지 않고 토끼뜀을 뛰며 하앗-둘 하앗-둘 뛰는 것과 유사하다. 보사노바는 아래 첫마디의 리듬이 베이스에서 반복된다.

세로줄로 구획을 나눈 '한 마디'를 빨간 색 펜을 사용해 넷으로 쪼개보았다. 각 부분의 시작을 정박자라고 한다면 보사노바의 기본 리듬은 2박과 4박이 뒤로 밀려나 흔들흔들거린다.

  나를 비롯해서 한국인들이 재즈의 스윙리듬의 재빠른 발놀림이나 이 보사노바 리듬의 느슨한 껄렁함을 꽤 오랜 시간 어색하게 연주하는데, 이는 한국이 오래전부터 정박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음악 감상은 잘하겠는데 직접 재즈피아노를 연습하면 자꾸 1박에 강세를 넣고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

    가볍지만 빵빵한 오리털 패딩을 입고 뛸 때처럼, 이 노래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서 날아갈 것만 같다. 보통은 프랑스 샹송을 들으면 언어가 몽실몽실하고 가벼워서 마음이 가벼워지는데, 이 노래는 마음을 자극시키고 자꾸 긁는 스페인어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처럼 가볍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느낌은 각 사람의 고유한 것이며, 청각적 자극을 즐기며 나만의 느낌을 찾는 과정은 상당히 즐겁다.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 중 '비교하며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여러 버전의 음악을 듣고 다양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감상의 즐거움이 배가 되게 한다. 요즘 고깃집은 단순히 고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콘셉트, 고급 와인바 콘셉트 등 특정 콘셉트를 잡아 인테리어와 메뉴를 구성해 놓은 곳이 많았다. 음악도 '편곡'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같은 선율이어도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원곡이 가장 좋을 때도 있고, 오히려 편곡한 곡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음악을 비교하는 것은 나만의 음악 취향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음악 비교감상 코스>

* 눈을 감고 행동을 멈추고, 내 감정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1. 원곡 (음악 듣기) 

2. 팬텀싱어 시즌3 존노, 고영열의 연주 영상 (영상 보기)

3. 존노, 고영열의 앨범 <Cantar> 속 다른 버전 (음악 듣기)

4. 다시 원곡으로 (음악 듣기)

                    

1985년도에 만들어졌는데, 앨범 재킷의 핑크와 민트가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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