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빛 Jan 06. 2024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

<달에 홀린 피에로> 쇤베르크(독일, 1874-1951)

    가창 수행평가가 끝나고 학생들과의 노래방 시간에 어떤 학생이 수행평가 곡이었던 김동률의 '출발'을 부르려 하자 제발 더 이상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듣고 학생들이 웃음이 터진 적이 있었다. 애들은 이 곡을 노래방에 가서도 불렀다는데... 나는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냉큼 지워버렸다. 석 달 동안 이 노래를 천 번 이상은 듣고 불렀으니, 지치고 지쳐서 김동률의 사진도 쳐다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래서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확실히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발언은 선생님으로서 절대 하지 않을 법한 말들이다.

   비록 수많은 규칙 위에 서있는 직업이지만, 내 수업에서 만큼은 자유로움을 유지하고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한다. 음악분야에서 가질 수 있는 대표적인 선입견으로는 '현대음악'이 있다. 현대음악. 현대에 작곡되는 음악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더 정확히는 음악사에서 세계 2차 대전 전후로 작곡된 예술음악을 이야기한다. 예술음악이란 대중음악과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한데, 오래전 서양의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베르디의 오페라 등의 음악이 성행할 시기에는 지금보다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구분이 없이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학자들의 실험실과 마트의 가판대처럼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이 비교적 분리되었다.

    대학생 시절 필수 과목이었던 미학 수업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미학을 공부하며 좁았던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이 넓어졌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깨달았던 시기였다. 나는 예전에는 현대음악을 싫어했고, 현대음악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게 된 것은 아름다움의 기준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부터이다. 물론 지금의 내 기준에도 현대음악은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아름답게 들리지 않는 음악일지라도 그 가치와 의도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현대음악을 듣는 내 마음가짐과 표정은 작년 연말 한 시상식의 박진영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모키화장을 하고 선보인 무대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김서형의 눈빛과 유사하다.


    우리가 흔히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를 떠올렸을 때 한 번에 울리는 명확한 어울림은 '화성'음악이라 부른다. 이 '화성'은 자연의 법칙에서 유래한 것으로, 위대한 삼각형의 요정 피타고라스 선생님의 발견에 의해 그 원리가 정리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적인 울림의 조화의 법칙을 거슬러보고자 노력한 쇤베르크는 음악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아방가르드'한 사람이었다. 큰일이 일어나려면 작은 일이 반복되어 그것이 쌓여 터진다는 말처럼, 쇤베르크도 혼자만의 질주라기보다는 많은 음악가들이 기존의 음악과 다른 새로운 것을 쫒고 쫒다가 쌓이고 쌓여서 터져 나온 것이다.

    "이 노래는 음정 정확히 내면 빵점이다~" 감상수업 때 학생들에게 감상 포인트를 잡아주고자 이 말을 하고 들려주었다. 감상곡은 쇤베르크의 노래 묶음 <달에 홀린 피에로>. 이 곡에 쓰인 쇤베르크가 도입한 기법 "Sprechstimme(속삭임이나 탄성, 외침 등이 포함된 낭송조의 창법)"를 위해서다. 슈프레흐슈팀메?.. 읽기 어려운 독일어라 지금도 헷갈리는 단어다. 장기하 특유의 읊조리는 창법의 '공포'성악버전이라 하면 감이 오지 싶다. 쇤베르크는 이런 식으로 조금씩 화성음악에서 뛰쳐나갈 준비를 해왔던 것 같다.

*쇤베르크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자화상. 쇤베르크는 세상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이전의 음악과는 달리 인간 내면의 불안과 좌절 등 부정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쇤베르크의 시퍼런 죽음이 서린 자화상을 보면 항상 소름이 끼친다. (시선이 조금 위에 가있어 더 소름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자신감이 엿보여 부럽기도 하다. 쇤베르크가 정확한 음정을 내야 한다는 관념을 확실히 깨뜨리고 <달에 홀린 피에로>를 선보였다.


<달에 홀린 피에로> (듣기) 

*마음이 섬세하거나 불안감이 있는 분은 밝은 곳에서 잠깐만 듣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 곡을 처음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대부분 뭐야, 무서워.. 쌤, 이게 음악이에요? 그만 들어요! 듣기 싫어요. 짜증 나요. 음악수업 맞아요? 교과서에 있어요? 아 있네.. 등등의 반응이 순식간에 쏟아져나온다. 위 유튜브 영상의 댓글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댓글 중 "엄청난 곡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곡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선율인 것 같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의 답댓글에 "병원 가보세요"가 달려있다. 사실 나도 이 노래가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 앞에선 좋은 척에 도가 텄다. 마음을 한번 열고 들어봐, 얘들아~ (사실은 나도 듣기 싫어..)

    위에 언급했듯이 쇤베르크는 인간 내면의 극단적이고 불합리한 심리상태를 전달하고자 했으며 귀에 거슬리고 거친 소리를 내는 세상에 없던 연주기법을 만들어내었다. 성악 분야에서 고안한 것이 바로 이 곡의 "Sprechstimme"인 것이다. 따져보면 쇤베르크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고, 사람들도 그의 의도를 이해하고 정확히 느끼므로 성공한 작곡가라고 볼 수 있겠다.


쇤베르크의 Sprechstimme 표기방법. 대충 이쯤 비슷하게 소리 내라는 의미이다. 그나마 표기된 음높이도 조화로운 선율은 아니어서 스산하고 기괴하게 들린다.


    이렇게 앞서나가 돌을 맞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쇤베르크가 없었으면 장기하의 음악도 심심했을 것이며, 배경 효과음 없이 공포영화를 봤을 수도 있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한 쇤베르크를 비롯해서 현대음악가들은 세계 1차, 2차 대전과 산업화를 통해 생겨난 참혹함과 괴로움을 일시적으로 회피하지 않고 인정해 나갔다. 음악은 살아있어서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널리 퍼뜨린다. 아름다움도. 고통도.


이전 06화 당신은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