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빛 Jan 07. 2024

하희돈 선생의 명쾌한 음악

하이든 (오스트리아, 1732~1809)

    하이든(해방 전 이름: 하희돈)의 음악은 명쾌하고 유리처럼 투명하며 따뜻하다. 음악을 들어보면 하이든은 재치 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에 있는 절망적인 어두움이 하이든에는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음악이 작곡가의 자식이라면, 하이든의 자식들은 그 성격이 한결 가볍고 뚜렷하며 비교적 직설적인 성격을 지녔다.

늦봄의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기분, 혹은 초가을의 살짝만 시원해진 느린 속도의 바람. 여름부터 피어있었던 노란 계국 위로 잠자리가 유유히 날아다니는 계절일 것이다. 하이든은 모차르트나 베토벤보다 어딘가 여유 있고, 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냄새를 풍기지 않고도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곡가이다.

    하이든(1732~1809)은 모차르트(1756~1791)와 베토벤(1770~1827)의 스승 격의 작곡가였다. 당시 오늘날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불리는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세 작곡가는 서로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음악과 비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가장 짧고 굵은 인생을 살았고, 세 작곡가의 생이 겹치는 연도는 1770년부터 1791년까지 21년간이다. 베토벤이 13세경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인 <드레슬러 행진곡에 의한 9개의 변주곡> (WoO 63)을 고려하면 1783년부터 1791년까지 약 8년 동안 그들이 활동한 시기가 겹친다고 볼 수 있다.

    하이든의 가장 유명한 곡은 교향곡 제94번 <놀람>, 교향곡 제45번 <고별> , 트럼펫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등이 있다. 놀라운 것은 하이든은 77년의 인생동안 104개의 교향곡을 작곡해 1년에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니 교향곡 자판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교향곡의 형식을 마련하는 크나큰 업적을 세웠다. 이렇게 대단한 작곡가이지만 하이든은 소박한 재미를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놀람 교향곡을 들어보자.


교향곡 제94번 <놀람> (듣기)

소리를 최대로 키우고 집중해서 1분까지만 들어보면 이 곡의 재미를 알 수 있다.


    이제 이 재미를 다른 이들에게 써먹을 수 있다. 나는 매년 학생들을 놀리기 위해 써먹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점잖은 교향곡을 듣는 줄 알고 벌써부터 안조는 척 조는 자세를 잡다가 갑작스러운 소리 공격에 화들짝 놀라 자빠지는 학생들을 보노라면 말 안 듣는 학생들을 좋게 좋게 말로 달래야 하는 답답함이 싹 풀리는 기분이다. 1년에 딱 한 번만 써먹을 수 있어서 매우 아쉽긴 하지만 이 재밌는 걸 놓칠 수는 없다. 아래에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교향곡이 있다.


교향곡 제45번 <고별> (듣기)

이 곡은 전체를 음악만 듣기보다는 중간부터 영상 위주로 보는 것이 재밌다.


    이 곡의 제목은 고별. 하이든은 평생을 고용인, 이를 테면 작곡하는 직장인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당시 귀족에게 고용되어 전속 작곡가로 따라다니며 열일했다. 휴가철에도 어김없이 귀족의 휴가를 음악으로 풍족하게 채워주어야 했는데, 하이든과 단원들도 사람이지 않는가. 타지에서 가족들도 보고 싶고 좀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이든은 센스 있게 이 고별 교향곡을 만들고 고용주에게 들려주어 악단 모두의 휴가를 따냈다. 멋진 상사 같으니라고.  

    단원들은 연주를 하다 한 명씩 밖으로 나간다. 그냥 갑자기 일어나 나간다. 위에 연결해 놓은 영상의 지휘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피아니스트 출신의 지휘자인데, 빈자리를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연기가 재미를 더한다. 목관악기 주자는 심지어 와인잔을 들고 술을 마시러 나간다. 자리가 많이 비자 몇 명 남았는지 사람 수를 센다. 맨 나중엔 남은 두 사람의 머리까지 쓰다듬으며 붙잡아놓지만 결국 다 도망치고 지휘자 혼자 남아 연주를 쓸쓸히 마무리한다. 하이든은 재미를 실천하는 용기 있는 센스쟁이다. 잘못하다 잘릴 수도 있는데 개의치 않고 고용주에게 패기 있게 유머를 던지며 휴가를 달라니.

    다른 곡에도 하이든의 밝고 활기찬 성격이 녹아있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은 예전엔 장학퀴즈, 요즘엔 '엘~리 하~이 엘리하이해'로 알려져 있다. 들으면 용기가 나고 활기가 생기는 음악이라 가끔 비타민이 필요할 상황에 챙겨 듣는다. 첼로 협주곡도 만만찮다. 첼로로 상쾌 통쾌한 소리를 내자면 뭐 이 곡 만한 것이 없다. 워낙 부드러운 저음의 악기라 슬프고 애절한 곡에 잘 어울리지만, 하이든은 첼로를 용감무쌍한 탐험가의 뒷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이든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자극을 많이 주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하이든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음악을 들려준다. 외식을 매일매일 하다 보면 언젠가 집밥이 그리울 때가 있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삼삼한 집밥처럼, 동시에 색색 투명한 유리로 만든 유리공예품처럼, 일상이 지루한 나에게 기분 좋은 농담을 던지며. 하이든의 음악은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다가온다.


이전 04화 사랑의 모습을 노래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