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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Mar 20. 2023

복도 텃밭

얼뜨기 도시농부의 손바닥 농사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다.

<카렐 챠페크>

나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몇년전부터 복도에 작은 화분과 텃밭상자를 내놓고 키우고 있다. 구청에서 텃밭상자를 분양한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하느라 호들갑을 떠는 나를 보고 남편이 비웃었었다. 젊었을적에 물을 그득 담아놓고 물위에 둥둥 띄워놓기만 하면 되는 부레옥잠을, 수조물이 다 마르도록 물을 안 부어줘 말려죽인 나의 전적을 아는 탓이다. 자기도 같이 물을 안 줘놓고는 내가 뭘 키운다 하면 평생 그 일을 가지고 들먹인다. 


그런 비웃음을 불식시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바지런을 떨며 농사를 짓는다. 농사라고 해봐야 가로 세로 60*30 텃밭상자 4개에 가지, 토마토, 고추, 상추 모종을 사와 심는 게 전부다. 작은 화분들엔 스피아민트, 바질, 애플민트, 라벤더등 허브를 심어 기른다. 역시 모종이다. 씨앗으로 심어 키워야 진정한 농부포스를 획득할텐데 언감생신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것도 굉장한 농사다. 일을 하려면 하루종일이라도 할것이 생긴다. 흙을 몇 해 만져보니 풀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기 위해서는 땅을 돌보고 기름지게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것, 잘 안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 
<카렐 챠페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서툴고 나쁜 농부다. 부레옥잠을 말려죽인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가지에는 진딧물이 끓기도 하고 며칠 물을 안줘서 스피아민트가 죽여줍세하고 옆으로 누운것을 보고 기함을 하기도 한다. 난 목마르면 꼴딱꼴딱 들이키면서 너희들은 줄것이 물밖에 없는데 그걸 까먹었구나..미안해 미안해 내가 앞으로 잘할게~ 혼잣말을 하며 물을 주는 광경을 옆집 아줌마가 안봤기를 바란다. 

상자텃밭이 생기니 복도가 예전 골목의 기능을 다소나마 회복했다. 이웃들은 이불을 털러 나왔다 마주치면 나의 텃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복도에 펼쳐친 흐드러진 초록을 고마워한다. 계절이 무르익어 방울토마토나 고추가 제법 딸 정도로 맺히면 우스운 갯수지만 수확을 나누었고, 이웃들은 마치 농경사회처럼 올해 작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칭찬해주었다.

지난달, 새로 사온 부엽토와 상자안의 흙을 섞고 쌀뜨물을 부어 밭을 골라 놓으니, 해가 바뀐지는 몇달 지났지만 비로소 한해가 시작된 듯한 느낌이다. 올해는 무슨 모종을 사서 가꿔볼까. 땅을 살피고, 물을 주고, 진딧물을 하나하나 손으로 죽이고, 지지대를 해주고, 실로 엮어주고, 웃자란 가지와 잎들을 정리해주면서 또 한해가 가겠지 싶다. 한해의 사이클이 농작물과 같이 엮어져 그려지다니 이만하면 도시농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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