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제작 김현지 PD, 김주완 기자
유대 속담에 나이가 들면 지갑을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있다. 쓸데 없이 젊은 사람들 불편하게 주저리주러리 '라떼'돋는 이야기 하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라는 이야기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지만 나이들고 보니 이 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나는 점점 주책없이 자꾸 말만 많아져 깨알만큼이라도 더 안다 싶으면 잘난척하기 일쑤고 벌어놓은 것이 변변찮으니 지갑여는 일엔 인색하다. 20대부터 장학사업을 하셨지만 입은 천금처럼 무거운 김장하 선생의 다큐를 보고 나니 세상 부끄럽고 반성이 된다. 조명이 빛나는 가운데 자리는 마다하시고 저기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일을 만들어 왔던 사람, 규모를 따지기도 힘들만큼의 재원을 사람과 단체에 지원하셨지만 정작 본인은 평생 자동차 한 번 사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뚜벅뚜벅 걸어오셨던 김장하 선생.
김장하 선생은 1944년 경남 사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약방의 직원으로 일하다 열아홉 최연소의 나이로 한약업사 자격을 얻었다. 수가를 낮추고 좋은 재료를 써 금새 유명해졌다는 한약방. 선생은 수완좋고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선생은 그렇게 모은돈으로 평생 장학사업, 형평운동 기념사업, 인권운동지원, 문화예술계 지원, 피해여성지원사업등에 거액의 후원금을 기탁하여 사람과 일이 성장하게 도운 분이다. 그가 평생 한 일은 개인의 발자취라기보다, 마치 유구한 역사의를 자랑하는 어느 시민단체의 <사업내역>이나 <연혁>처럼 길고 두툼하다.
2019년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몰래 준비한 생일잔치에서 김장하 선생은 말씀하신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만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또 이렇게도 말씀하신다다.
"내가 이 험한 세상 살아오면서 제일 힘이 되었던 것은,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선생의 말씀 중 '깨끗하게'라는 말보다 '비교적'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가 강박으로 보일만큼 깨끗하고 청빈하게 살아왔다고 증언하는데
그는 낮은 목소리로 '비교적'이라는 단어를 힘을 주어 말한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사람들이 정작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돌아다녀 더 부끄러워지고
안 부끄러워해도 될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고 참회하고 더 훌륭해진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내가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호화방탕한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않았기때문에 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게 된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큰 환대와 지지를 받았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선생이 지원한 학생중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던 분이 데모만 해서 죄송하다고 하자 선생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힘을 주셨다고 한다. 그런 지지는 본인 평생 받아본 적이 없고 그것이 큰 힘이 되어 자신을 나아가게 했다고 한다. 또 한 제자분이 장학금을 받았지만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그런 말 하지마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해주시는 장면도 감동을 준다.
선생은 단지 선해서 돈을 잘 베푸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 사회가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분이기 때문에 하실 수 있는 말이다. 그렇기에 선생의 말씀이 큰 위로와 지지가 될수 있는 것이다.
"돈이라는 게 똥하고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뿌려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선생은 세상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한곳에 모여 있으면 탈나기 일쑤인 돈을 흩뿌려 세상을 널리 기름지게 하고 싶은 사람이다.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나누어 갖고, 누가 누구위에 있지 않는 '형평'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원대하고 버거운 꿈이다. 그럼에도 단지 꿈으로 저 멀리 두지 않았다. 성실하고 영리하게 한약방을 운영하고 크게 키워 돈을 모으셨다. 그 돈으로 선생의 표현대로 '꼼지락 꼼지락 사브작 사브작' 형평세상을 향하기 위해 쓰신 분이다.
김장하 선생의 지인들은 그를 가르켜 '생불(生佛)'이라거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어떤 상(相)을 기대하지 않고, 내가 내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 버리고 주는 보시-의 경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대하는 바 없이 무조건 베풀고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과 다른 일이라면 거절을 하셨다. 후원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후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김장하 선생에게서 '선한 독지가'의 모습보다는 '냉정한 개혁가'로서의 모습을 본다.
김장하 선생은 본인이 희망하는 사회에 대한 명확한 상(相)이 있고, 자신의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강한 소명과 책임감을 가진 분이다. 다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직접적으로 하기보다, 그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뒤에서 후원하고 지원하는 일을 택하셨다고 생각한다. 김장하 선생은 어떤 선행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면 답을 안하신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신다. 단지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해서는 아닐 것이다. 나와 그 사람들 역할이 다른 것뿐이고, 내가 오로지 한 일도 아닌데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길고 맞는 단어를 찾기 힘드니 가만히 묻는 사람을 바라만 보신다.
“최동원 선수는 참말로, 참 좋아했지. 스트라이크 던져서 맞으면 또 그 자리에 한번 더 던지거든. 쳐봐라 이거지. 그런 배포가 좋아.”
"그 선생을 탈락시켰더니 난리가 난거예요. 김장하가 뭐 때문에 뻐기고 있는데. 교육부에서 감사가 내리왔어. 이 잡듯이 잡는 거지요. 그리 나오면 나는 쉬워요.. 왜냐하면 잘못한게 없거든."
김장하 선생은 야구를 좋아하신다. 최동원 선수 이야기를 하실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장난꾸러기 얼굴이 되시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방금 전까지 '위인 김장하'였는데, 야구 이야기를 하면 '인간 김장하'가 되는 것이다. 최동원 선수의 배포는 젊을적 권력에 밉보여 교육부 감사와 세무조사를 받을때의 선생의 모습과 닮아 있다. 지금은 한없이 맑고 온화해 보이는 선생이지만, 젊을적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눈빛이 형형하고 투사의 면모가 있다. 권력의 횡포도 자신을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롯데에서 NC로 갈아탔어. 구기 경기중에 야구가 제일 재미있어요."
선생은 최근 여러 지원 사업들을 정리하시고 60년 한결같이 운영하던 한약방도 문을 닫고 은퇴하셨다. 그는 많은 사진에서 끄트머리와 구석자리에 앉아있었다. 가운데 자리를 이사장 자리로 비워놓아도 선생은 사양하셨다. 끄트머리 구석자리에서 시대를 온몸으로 밀어오신 분이었다. 이제 그 자리를 그가 향기로운 거름으로 키워낸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자연인으로 여생을 한껏 즐기셨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NC야구경기도 직관하시고, 그를 묵묵히 지지해준 품 넓은 그의 가족들과 평온하고 느린 삶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 전 이 프로그램을 wavve에서 봤습니다.
* 김주완 기자의 김장하 선생 취재기를 담은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도 기회되면 읽어보려고 카트에 담아두었는데요. 분명히 좋겠지요. 일독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