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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Apr 11. 2023

그녀의 사춘기를 응원합니다

2차성징이 시작된 딸이 나 몰래 읽어줬으면 하는 이야기

이미지 :  <기억>, 르네마그리트

며칠 전. 올해 4학년 딸아이를 재워주러 들어간 남편과 아이가 대화하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린다. 딸아이가 묻는다.아빠는 자신이 남자인게 좋아? 남편이 무어라 말한다. 귀가 쫑긋 궁금하지만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참는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고 잊고 있다가 딸에게 오늘 아침에야 물어봤다. 아빠한테 왜 그런 질문을 한거야? 어 난 남자가 좋아. 왜~~애? 물어보는 말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간다. 남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녀도 되잖아. 긴 머리가 귀찮기도 해. 머리는 너 편한대로 해도 돼. 넌 어떤 머리를 해도 어울려. 나는 그 말을 그 아이가 더 어렸을때부터 아주 많이 해왔다. 그런데 나는 긴머리가 어울리고 그 모습이 아니면 이상한 거 같아. 나의 말은 아이한테 닿지 않는다.

소녀들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자신의 몸을 다른 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을 의식하고 그 몸에 다소 갇혀 있다.
 남자를 동경하는 것은 그래서일까. 육체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것일까. 그래 나도 그랬지. 나도 그것을 동경했다. 

딸에게 그동안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야지 하는 말을 해왔지만 한편 얼마간 공허하다. 과연 그런가. 우리의 몸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들여지고, 각자 생긴대로 존중받고 있는가. 소중하다는 내 몸을 나는 사랑하고 잘 돌보고 살아왔나. 자라는 내내 자신을 작은키에 얼굴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성년이 되자마자 계단같은 높은 하이힐에 발을 욱여넣고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나의 용모에 대한 생각은 밖에서 와서 내 것이 되었다. 딸이 넷, 막내로 아들 하나인 집의 넷째딸로 태어난 나는 키와 생김새에 대해 자라면서 많은 비교와 평가를 들었다. 그 말들은 나를 헤쳤다.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 나만 그런것도 아니고 여자라면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못난대로 예쁜대로 각자 한보따리씩 이야기가 있다.

나 젊었을때는 여리여리 가냘픈 여성의 모습이 모델이더니, 지금은 육감적이고 볼륨이 있으면서도 얼굴은 덜자란 소녀같아야 한단다. 여성의 몸에 바라는 욕망은 더 괴상해지고 더 뻔뻔해진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은 피곤하다. 늙어지니 더 이상 그런 욕망에 부응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나의 딸은 또 어떤 시대를 살아가게 될까. 그 시대의 사회는 그녀의 몸에서 어떤것을 요구까.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자신의 몸을 미워하게 될까.

얼마전부터 딸아이는 2차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슴 몽우리가 생긴걸 인지한 후 몸에 뭔가 병이 생긴 것은 아닐까 반나절을 불안했다고 한다. 몸이 변하는 거야. 네가 크고 있다는 얘기야. 자연스러운 거야. 대부분 다 그래왔고 네 친구들도 다 비슷하게 겪었거나 겪을 변화야. 안심한다. 하지만 1~2년새 월경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그녀의 눈빛이 불안하다. 그 눈빛을 나는 안다. 내가 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언니들이 차례로 월경을 하고 내 차례가 됐을 때 엄마는 한숨을 포옥 쉬었다. 너두 시작이구나. 성교육을 해주시던 선생님은 엄마한테 말하면 축하한다고 해줄거라고 했는데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생리대 값을 걱정했다. 
딸이 넷이고 엄마 포함하면 여자가 다섯인 가난한 집은 그런것이 먼저 걱정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줄줄이 넝쿨처럼 같이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어쩔수 없이 청승맞아진다. 넷째도 딸을 낳으니 아무도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엄마가 손수 미역국을 끓여먹었다는 이야기, 그 시절은 어린애가 일찍 죽어 출생신고를 미루고 다음해가 되서야 했다는 이야기. 내가 사내아이였어도 아버지는 다음해까지 신고를 미뤘을까. 이름도 제대로 준비해가지 않아 읍사무소 직원이 이렇게 저렇게 지으라 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는 술이 취하면 빙글빙글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뭐가 재밌다고.

그래서 나는 이런 내 감정을 딸아이한테 탯줄로 물려준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딸아이는 어린 아이였을때부터 자신의 몸이 장차 행할 예정인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가슴이 나오고 월경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 늙는 것, 죽는것. 그 모든 것. 딸은 나의 배에 있는 제왕절개 자국을 무서워한다. 엄마 난 커서 결혼도 안하고 아기도 절대 안 낳을거야. 음..다 이렇게 낳지는 않아. 여자 몸에 있는 아기 길로 나오기도 해. 아이의 표정을 보니 이 말이 대화의 방향이 아닌것 같다. 더 괴로운 표정이다. 낳지 않고 싶으면 안 낳으면 돼. 아이가 생기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다 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럼 결혼만 하고 아기는 안 낳을거야. 아기 안 낳자고 하는 사람이랑 결혼할거야.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 둘을 꼭 닮은 예쁜 아기를 낳자고 하면? 내 몸이니까 내 맘이라고 할꺼야. (음.. 그래 나도 그랬지. 그러다가 네 오빠랑 너를 낳았지. 하지만 이 말은 하지 말자. 오늘은 여기까지) 아, 결혼은 하고 싶고? 어 결혼은 하고 싶어.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하고 결혼해서 고양이를 같이 키우면서 살꺼야. 그래 그러면 되지. 그러면 되겠네.

딸 녀석은 이미 6살무렵부터 심사가 틀어지면 엄마는 내 맘도 몰라주고 미워!라며 제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기 때문에 도대체 그녀의 사춘기는 어떤 강도로 올 것인가를 생각하면 뒷목이 살짝 당겨온다. 다만 바랄뿐이다. 그녀가 나 어릴때처럼 마음 걸어둘 데가 없어 혼자 허우적거리지 말기를. 질풍노도에 올라타 그 진폭을 잘 견디고 그 파도의 질감을 손에 묻혀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마침내 부드러운 해안가에 연착륙하기를. 그녀가 거친 진폭을 그리며 위 아래로 요동칠 때 나는 X축위에서 그녀와 가끔 조우하는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지켜볼테다.

그리하여 그녀가 몸도 마음도 한뼘씩 크기를, 그 뼈를 잡아줄 단단한 근육을 가지기를.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사시사철 햇볕에 내놓고 물주듯 잘 돌봐주기를. 그 몸으로 부정적이고 나쁜 경험을 상상하고 겪는 대신 온갖 즐거운 일들을 경험하기를 바래본다. 가고 싶은 곳을 흠뻑 여행하고 별탈없이 돌아오기를(우리는 그것이 대단히 큰 소망임을 안다). 그리고 그녀가 걷는 모든 밤길이 보름달같은 가로등으로 구석구석 밝고 안전하기를. 그런 소망들도 빌어 보는 것이다.

그녀의 사춘기에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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