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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May 15. 2023

뇌를 알기 나를 알기

<우울할 땐 뇌과학>, 알렉스 코브, 정지인 옮김, 심심


<우울할 땐 뇌과학>은 뇌과학을 전공한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우울증 전문가인 알렉스 코브의 책이다. 제목의 의도대로 우울감등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힘들때 뇌에 대한 이해로 상황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의 뇌는 누구나 동일한 영역과 회로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생각하는 영역(전전두피질)과 느끼는 영역(변연계)이 뉴런으로 이어져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사이좋게 기능과 역할을 나눠 잘 작동하다가도 작은 꼬투리 하나가 빌미가 되어 이 영역들이 의사소통이 안되거나, 된다해도 안좋은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몸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하강나선을 만들어내는데 저자는 이것이 우울증의 기작이라고 설명한다. 알렉스 코브는 실제 우울증을 여러번 겪기도 해서 우울증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그저 항상 슬픈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사실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서 꼭 슬픔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고 느낀다." -p.12


그랬다. 내가 극도의 우울함을 느낄때가 있었는데 그 때 상태가 저러했다. 텅빈 느낌. 끝도 모를 좌절감과 무기력함. 알렉스 코브는 '아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저자가 전하는 우울증에 관한 좋은 소식과 나쁜소식이 있다. 보통 나쁜 소식부터 듣는게 국룰이다. 나쁜 소식은 우울증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처럼 특정 뉴런이나 특정 단백질이 병의 원인으로 밝혀진것이 아니다. 우울증에 어떤 뇌의 영역이 관여하는지, 어떤 신경화학물질이 관련되어 있는지는 대략 밝혀졌지만 훨씬 미묘하고 복잡해서 발현되는 증상으로 진단할 수 밖에 없다. 


자 그렇다면 좋은 소식은 무얼까? 사실 이게 중요한데 정말 좋은 소식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잘 모르지만 벗어나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충분히 안다는 것이다. 햇빛쬐기, 충분한 수면, 운동, 자세를 바르게 하고 결단을 내리기, 미소 짓기, 찡그리지 말기, 심지어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일기를 써보기등 소소하고 실천 가능한 많은 방법이 도움이 된다. 근거가 뭐냐고? 알렉스 코브를 비롯한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실험을 했고 입증한 데이타가 있다. 그는 '아 내가 실험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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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알아차리는지 알아차려라. 우리는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정보의 조각들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편향을 갖고 있는지는 알아차릴 수 있다. 빨간불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화가 난다면 이렇게 생각하라. '오호, 흥미로운데? 나는 이번 빨간불은 알아차렸는데 아까 파란불을 통과할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네.' 한마디로 판단하지 않는 알아차림을 연습하라는 말이다."  - p. 94


이 책의 1부에서는 우리의 뇌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걱정과 불안은 왜 꼬리를 무는지, 나의 기억들은 왜 전부다 부정적인 경험으로 가득한지, 침대에서 빠져나와 운동을 하러 나가는게 왜 그다지도 힘든지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호두모양의 뇌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뇌사진은 언제나 나에게 기묘한 느낌을 준다. 생김새와 기능이 명확하고 독점적인 인체의 다른 장기에 비해 뇌는 뭔가를 빚었다가 화가 나서 구기고 뭉친 모양새다. 색깔은 전부 회색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배측 선조체인지, 측좌핵인지, 섬엽인지, 해마인지 화살표끝을 따라 한참을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 네가 잘 이해가 안 갈까봐 다시 설명해줄께. 조근 조근 설명 설명. 아 그래도 잘 모르겠어? 그래 이런 용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까먹어도 돼. 중요한 건 우울증이나 나쁜 습관이 일어나는 기작이야. 저자의 참을성 있게 설명하는 태도에 설득당해 호두를.. 아니 뇌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단지 우울함을 느끼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는 그 잘못 조율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하강하는 경향성을 가지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한다. 뇌의 영역과 회로,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작동하는 방법을 이해하면 그 하강곡선을 멈추고 배선을 달리해서 상승곡선을 만들어 낼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다. 차의 내부구조를 이해하지 못해도 운전을 할 수 있지만, 차의 구조나 작동원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차를 운전하는데 더 자신감이 들고 문제가 발생했을때 빠르게 대처할수 있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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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이 우울증을 단숨에 해결하는 단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런 해법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작은 해법 수십 가지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들을 더하면 부분의 총합보다 더 큰 해법이 된다." - p. 17


2부에서는 우울증과 나쁜 습관을 벗어나는데 있어 실험으로 입증된 많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게 하나는 있겠지~ 라며 영업하는 분위기다. 저자 본인이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해법들은 절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위로로 가득 차 있다.  


약 20년전 엄마의 우울증이 깊어졌다. 깊어졌다고 표현하는것은 엄마는 이전부터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주 비탄과 분노 슬픔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한 해 그 증상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병원에 입원했다. 엄마가 입원한 병동은 개방병동이었지만 복도끝에는 철창으로 막혀져 있는 폐쇄병동으로 이어져 있었다. 엄마가 언제든 저 곳으로 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두운 복도끝을 바라보면 체온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입원당시 엄마는 무기력과 극도의 피로감, 불면증 , 자살충동으로 괴로워했다. 번잡한 입원 절차와 간병보다 괴로운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절망과 무기력으로 끝도 없이 쳐졌고, 나는 그녀를 도울 방법을 몰라 똑같이 무기력해져 갔다. 엄마가 다른 병이었으면 하고 소망했고 그렇다면 내가 하는 수고가 의미가 있을텐데 하고 영악한 생각을 했다. 병실 창문으로는 1층 정원이 내려다보였는데 머리에 모자를 쓴 환자가 딸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다행이 엄마는 입원 후 얼마가 지나 약에 반응했고, 병실에 있는 자신보다 더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을 보며 기운을 냈다. 멍하니 나를 쳐다보기만 하더니 직장을 휴가내고 자신을 돌보는 나에게 촛점을 맞추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가 그 때처럼 증세가 심해지면 어쩌나 또는 나에게도 엄마가 겪었던 병의 씨앗이 심어져있어 언제든 급작스레 발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 책에 있는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한 많은 방법이 허무할 정도로 쉽고 효과가 있다는데 놀라고 아쉬웠다. 그때 엄마의 등을 주물러 드릴껄, 손을 더 자주 잡아드릴껄, 내가 엄마에게 감사한 순간이 사실 얼마나 많았는지 속삭여줄껄, 싫다고 해도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으로 산책을 가자고 종용할걸. 그 모든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됐을텐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글쎄 그 부분은 좀 자신이 없다. 


이 책의 장점이자 반전. 쉽고 재밌다. 작가가 오래된 습관이 강화되는 메카니즘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배측 선조체가 말한다. "항상 이 방식으로 해왔으니 이번에도 이렇게 하자." 그러면 전전두피질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장기적으로 봤을때 도움이 안돼". 이 와중에 측좌핵은 이렇게 말한다. "와. 저 컵케이크 맛있겠다." 나의 뇌가 하루종일 시끄럽고 불협화음을 내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배측 선조체, 전전두피질, 측좌핵에 별명을 붙여 주었다. 습관이 계획이 충동이. 나의 뇌에 들어앉은 계획이는 작고, 습관이와 충동이는 크고 거대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이 녀석들이 자기앞의 버튼을 쾅쾅 누르고, 그 신호를 받아 긴 뉴런 끝에서 마법가루처럼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반짝반짝 뿌려져 다음 뉴런으로 전달되는 상상을 한다. 


이 책은 우울증 뿐만 아니라 사소하고도 다양한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걱정과 불안으로 일상의 색깔이 자주 변하는 사람, 유독 부정적인 감정에 더 지배당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 좋다. 네 접니다. 저요. 그러니까 딱 나에게 특히 좋았다는 말이다. 나의 뇌가 내 통제와 관리하에 있다는 안정감이 든다. 돌돌돌 작고 귀여운 상승나선이 기지개를 켜며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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