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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밤의 숲을 유난히 무서워 한다. 모시고 밤에 이동할때면 차창 너머 멀리 보이는 숲을 보면서 아~ 나는 저기 저 산이 너무 무섭다 아유 무서워 진저리를 치시며 말씀하신다. 도시태생도 아니고 충청북도 산골 동네에서 나고 자라신 분이 밤의 숲을 그다지도 무서워 하시는게 이상했지만 묻지 않았다. 엄마의 어떤 이야기들은 차라리 묻지 않는 순간들이 많다. 나중에 분명 엄마가 안계실때가 오면, 묻지 않았던 그 수많은 질문들이 후회될게 뻔하다.
그래도 엄마가 왜 검은 숲을 무서워 하는지 이제는 안다. 십수년 전 엄마에게 우울증과 공황이 와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이어보면 대략 10미터는 될것 같은 긴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다. 내가 묻고 엄마가 답했고 내가 다시 칸을 채웠다. 두려운 것, 무서운 사물등을 적는 항목이 나왔을때 엄마가 말했다. 난 밤의 산길이 무섭다. 또 그 얘기. 내가 묻지 않았던 이야기. 이제는 물어야 한다. 그게 왜? 하긴 어둡고 깜깜하면 무섭지. 나도 무서울 것 같긴 해. 귀신 나올것 같고 막. 그렇지? 아니다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
내년이면 여든인 엄마는 충북의 한 산골마을에서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셋,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는 집 여섯째로 태어났다. 다 아는 이야기다. 가난하고 또 가난한 이야기. 기억을 가지게 될 정도로 커 보니 위로 두 언니는 감나무에서 떨어졌다던가 독사에 물렸다던가 이미 죽었다 했다. 입은 많고 논도 작고 밭도 작고 척박해 배를 곯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엄마 나이 12살, 13살쯤 시내에 있는 한 집에 수양딸로 보내졌다. 말이 수양딸이지 보내진 후 보니 식모로 부리려고 데리고 온거라 했다.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했고 밥도 잘 주지 않아 여전히 배가 고팠다. 몇날밤을 눈물로 적시다 어느 한 밤 중 그 집 식구들 모두 잠든 시각에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달도 안뜬 칠흙같은 밤. 까만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깜깜한 밤. 하필 그런 밤을 골라 나섰을까 싶지만 어느 밤이어도 마찬가지였을것이다. 엄마 고향마을은 지금도 차로 시내에서 한참을 구비구비 산길을 달려야 한다. 차창 밖 가장 먼곳에 시선을 두지 않으면 멀미가 당장이라도 올라올것 같다. 오래전에 아스팔트가 깔린 큰 길이지만, 그 시절은 한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조금이라도 사람들 왕래가 드물면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지는 길이었다. 엄마는 밤새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문진표에
두려워 하는 것: 어두운 밤의 숲
두려워 하는 이유: 밤에 숲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함.
정도로 짤막하고 건조하게 기입해 넣었고 엄마를 위로했다. 아 그런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엄마가 그런 말을 자주 했었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네. 아니다. 사실은 나는 그 당시 엄마의 끝없는 우울증에 지쳐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가끔 그 밤을 상상한다. 엄마의 그 어두운 밤. 그 검은 숲. 정말 두려웠던 것은 거친 숲과 어두운 밤이 아니라 돌아가도 환대받지 못하는 아침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을 환한 햇살의 아침. 깊은 한숨과 냉랭한 눈빛이 오고가는 아침. 난 돌아간다 해도 시내의 그 야박한 집에 다시 보내질거야. 아니면 또 다른 집으로 보내질지도 모르지. 어두움보다 더 짙은 절망으로 가득했을 밤.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일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불행한 일은 훨씬 진하게 각인되는 법인데, 그 밤 이후 기억은 희미하고 흐릿하신 걸 보니 아마 크게는 비극적인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밤의 숲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울음마저 무서워 울지 못하고 얼어붙은 채 얼굴로 달려드는 풀과 나뭇가지를 헤치고 나아가는 작은 여자 아이가 보이는 것이다.
엄마의 기억은 나의 기억이 되었다. 밤길을 달릴때면, 유난히 짙고 검은 숲을 지나칠 때면 검은 숲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그 작은 아이를 떠올린다.
그 작은 아이의 곁을 같이 걷고 싶다. 눈을 찌르는 나뭇가지를 걷어주고 싶다. 하늘 천장에 새벽까지 꺼지지 않을 환하고 둥그런 달을 띄워놓고 싶다. 엄마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엄마의 가족들이 놀라 두 팔을 벌리고 고무신도 못 신고 엎어질듯 자빠질듯 부산스레 달려오게 하고 싶다. 그래서 왈칵 엄마의 엄마품에 뛰어들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위로받게 하고 싶다. 그 밤의 남은 밤을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하고 깊게 잠들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