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 산에 뜬 달 Jul 28. 2023

돌팽이와 찐달이

누구에겐 불청객, 누구에겐 귀한 손님

우리집엔 달팽이가 두마리 산다. 돌팽이와 찐달이다. 시장서 사온 상추에  한 마리가 붙어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좋아서 난리가 났다. 그 날부터 상추를 나눠 먹이며 키우기 시작했는데 어느날부터 사육통에서 보이지 않더니 며칠 후 부엌 개수대에서 발견됐다. 상심해있던 작은 아이가 방방 뛰며 집 나간 탕아가 돌아온 것처럼 또 난리가 났다. 그때 붙은 이름이 돌팽이다. 돌아온 달팽이 돌팽이. 그러다 식구가 늘었다. 이웃이 준 채소에 한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이 녀석 이름은 패각 색깔이 진해서 찐달이다.      


나는 사실 달팽이나 지렁이 뱀등이 불편하다. 싫어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싫어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인데 내가 뭐라고 엄연한 생명과 존재를 싫어하겠는가. 그러니까 달팽이를 마주칠때의 내 상태는 대번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뒷골이 당겨오는 뭔가 알러지 반응같은 것이다. 둘째 녀석이 달팽이에 열광하는 걸 보면 이런 형질까지는 유전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초등학교 4학년 작은 녀석은 달팽이를 키우기 전부터 별명이 달박이다. 달팽이박사라는 뜻이다. 초파리 모기 거미같은 벌레는 질겁하면서 왜 달팽이는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도서관에 가면 달팽이 도감류부터 달팽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책만 섭렵하더니 어느날은 자기가 싸인을 만들었다며 보여주는데 영문이니셜 옆에 여지없이 쪼매난 달팽이가 꼬물거리는 디자인이다. 달팽이의 특징과 생태에 대해 물으면 자판기처럼 척척 튀어나온다. 그녀는 준비된 사육자였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사육통을 심각하게 쏘아보다가 자못 전문가처럼 달팽이 일지에 뭔가를 슥슥슥슥 쓴다. 사육통 뚜겅을 열어 먹이로 준 상추나 양배추등의 신선도를 체크하고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하고 분무기를 몇차례 쵹쵹쵹쵹 분사해 습기를 제공한다. 갈아놓은 달걀껍질과 누군가한테 얻은 달팽이 전용 사료를 땅에다 적당히 뿌려 주기도 한다. 어느날은 욕실로 사육통째 가지고 가 벽에 붙은 달팽이 똥을 제거해주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네 방을 좀 그렇게 정리해봐라'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어야 한다.      

                                                                                    

달팽이가 칼슘을 섭취해야 패각이 두꺼워진다며 계란껍데기를 갈아달라길래 나무 절구에 갈아줬더니 이것보다 훨씬 더 곱게 갈아야 한단다. 기껏 팔빠지게 갈아주고도 이렇게 두껍고 거친 것을 달팽이가 어떻게 먹냐며 면박을 당했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너 이유식 갈아 만들어 먹일때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달팽이 줄 달걀 껍까지 땀내며 갈아야 하냐툴툴거려본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절구에 먼지가 날 정도로 달걀껍데기를 간다.     


강아지를 반대하던 아버지가 이렇게 변했어요. - 출처 : 인터넷


작은 녀석은 그렇게 유난스레 달팽이를 돌보더니 그 열기가 점차 식어갔다. 지식과 사육까지 달팽이에 대한 것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경험하더니 시들해져 버린것이다. 점점 상추가 말라비틀어져서 거무죽죽하게 변해있고 사육통의 흙은 영화 <듄>의 사막처럼 물기하나 없이 황폐한 날이 늘어났다. 들여놓은 생명이라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이제 사육통을 들여다보고 돌팽이와 찐달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물을 주고 먹이를 주고 모아놓은 달걀 껍질을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갈고 있는 사람은 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고 딸한테 묻는다. 돌아온 대답은 자기가 너어~무 바쁘단다. 뉘예 뉘예~ 그러시군요. 사랑이 변한자의 비겁한 변명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슉슉슉 빠르고 급하게 움직이는 둘째 녀석은 어떻게 달팽이에 매혹되었을까. 서로 너무 달라 끌린 것일까. 달팽이는 그 변화와 이동을 관찰하려면 한참을 지그시 지켜봐야 하고, 소리를 내 요구하는 바를 알릴 리도 없으니 세심하게 미리 살피고 준비해주어야 한다. 달팽이에겐 둘째녀석이 신과 같은 존재였을텐데...비를 내리게 하고 땅을 기름지게 하고 먹이를 주고 외로운 차에 친구도 만들어주는. 둘째녀석은 좋은 달팽이 신이었지만 직위를 나에게 양위(讓位)했다. 그런데 이것이 정상적이고 정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임자가 구찮아서 도망을 가 억지로 맡게 된 경우라 아침마다 사육통을 바라볼때면 다소 억울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어찌됐건 오늘도 나는 너어~무 바쁜 딸 대신 사육통 뚜껑을 걷고 쵹쵹쵹쵹 분무기로 물을 준다.


얼마 전 위태롭게 길을 횡단하는 한 무리의 민달팽이 무리를 만났다. 얘들은 집 있는 달팽이들 보다 53배쯤 불편하다. 사람이나 달팽이나 집이 없으면 서럽다. 역시 또 그 알러지 반응이 올라오지만 작은 녀석의 심상(心狀)을 건들고 싶지 않아 내색않고 있었더니 뒤늦게 민달팽이를 발견한 녀석이 펄쩍 뛰며 나한테 들러붙는다. '아 악 징그러 민달팽이~!!' 하이고 기가 막혀서 정말. 너의 취향은 정말이지 알수가 없구나.

      

뀨우~ 돌팽이예요.



작은 아이를 위해 만든 달팽이 인형 행복이 - 출처 : 우리집 줄무늬 양말


작가의 이전글 생기와 달맞이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