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부터 아버지의 상(喪)을 알리는 부고(訃告)가 카톡으로 왔다. 그 모임에 있는 다른 친구가 어머니상을 치른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았다. 어른들이 마치 어깨를 곁고 세상을 떠나는 것 같다. 이 때 가야 애들이 편해. 이렇게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상주인 친구를 제외한 단톡방이 곧바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문 날짜와 시간을 조용히 의논한다. 그 동안 친구를 통해 간간히 그녀의 아버지의 병이 진행되는 과정과 가족들이 간병을 하는 데 있어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해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와 비슷한 질병으로, 비슷한 경과를 보이다 가셨다. 몇년 전 겪어본 일이기에 그녀와 가족들의 고단함을 깊이 공감했다. 다들 비슷하게 아프고, 비슷하게 울고, 비슷하게 힘들지만 공감받는다한들 그녀가 덜 힘들거나 덜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닥쳐오고 지극히 개인적이다.
나는 우리 부모세대의 죽음이 두꺼운 하드커버 뒷표지를 탁 하고 덮어 내려놓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앞표지에 쓰여진 제목은 무엇일까. <1930년대 ~ 2023 : 근대 이후 가장 많은 정치체제와 격렬한 사건을 겪은 세대>쯤 되지 않을까? 일제강점기, 해방과 신탁통치, 한국전쟁과 분단, 유신독재와 베트남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와 직선제, 세월호, 촛불혁명, 코로나 팬데믹. 이 모든 것을 같이 겪고 각자 따로 겪은 세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겪으며 지나온 길은 얼어붙은 바다를 천천히 깨면서 나아가는 쇄빙선의 궤적을 닮았다. 어떤 것은 이야기가 되어 기록되고 어떤 것은 그 시절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냐 고개를 저으며 내뱉는 말로 씨를 틔우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언젠가 우리는 자신의 모든 역사, 자신이 했던 것과 말한 것, 봤던 것, 들었던 것이 찍힌 사람의 뇌를 볼 수 있게 될까? 아니 에르노, <세월>, p295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동안 나는 아버지 평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말하고 듣고 궁금하면 질문하고 다시 대답하고 하는 일반적인 대화 말이다. 나와 아버지는 양방향으로 흐르는 그런 대화를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아직 아닐 때, 대체로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섬망(譫妄)이 도지면 링거바늘을 빼 병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난동을 부리다가도 증상이 가라앉으면 아버지는 마치 아무 병기(病氣)도 없는 사람처럼 나직한 목소리로 아버지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뚝 떼어 가져와 이야기 하셨다. 자식들은 돌아가며 아버지의 병실을 지켰는데, 우리가 가진 이야기의 조각이 다를 것이다. 아버지는 다른 이야기 조각을 자식들에게 각자의 유산으로 남겼다.
어떤 사람은 왜 죽어가는 순간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는 걸까. 그 이야기를 진작에 들려주었다면 그를 덜 미워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나는 조금 슬퍼졌다. 하지만 곧 사람의 죽음은 인간의 모습으로 결합된 원자가 흩어지는 것뿐이고 그 원자의 수는 결코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 것이니 우주적으로 생각하면 태어나고 죽는것은 없고 결합과 분해만이 있을 뿐이라고 애써 슬퍼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그런 작은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재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생기를 새액새액 힘들게 뱉어내고 있을 때 어두운 병실 보조 침대에서 태블릿을 켜고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를 내며 그가 준 이야기들을 주워모았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떠올리며 꾸며낸, 순수하고 추상적인 자유에 걸맞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에르노, <세월>, p225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중에 많은 부분은 자신의 겪은 군대 생활이었다. 한국전쟁이후 끔찍하고 긴 군복무기간. 아버지는 그것을 대략 5년정도라고 기억하고 계셨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36개월이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세월은 훨씬 가혹하고 끝이 없이 길었을 것이니 5년이라고 해도 거짓이나 오류라고 하고 싶지 않다. 4계절을 몇번이고 겪었지만 항상 뼈시리게 추운 기억뿐이고 밥도 반찬도 형편없었다. 군인들이 무리지어 밤에 인근 농가의 농작물이나 닭 개등을 서리하고 잡아먹는 일이 다반사여서 군부대 인근 주민들은 군인을 보는 눈초리가 사나웠다. 아버지도 불침번 중에 근무지를 이탈해 수박도 훔쳐 깨먹고 농가에 숨어들어가 창고에 있는 생쌀을 찾아내 씹어 먹기도 했다. 그 대목에선 자신을 비난할까 싶어서인지 사람을 살게끔 부려야지 그러면 도둑놈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본과 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셨고 술을 드시면 나를 앉혀놓고 자주 얘기했던 으리으리한 시조묘에 대해서도 또 다시 얘기하셨다.우리 형제중 막내인 남동생을 애닳아하셨다. 남동생은 평생 노동과 가족부양으로 점철된 자신의 복제품이었다. 아들이 고달픈 자신의 인생을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아버지는 가슴이 아프다는데 왜 남동생이 부러웠을까. 나는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지 않는 딸이어서 스스로 대견해야 하는데.
해가 다르게, 아니 달이 바뀔 때마다 그녀를 둘러 싼 세상은 변함이 없는데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고 확신했었던 사춘기 때와는 반대로, 이제는 그녀가 달리는 세상 속에서 부동의 자세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에르노, <세월>, p312
돌아가신 후에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불쑥불쑥 과속방지턱처럼 무방비하게 떠오른다.
살아계실때는 원망과 분노가 향할 대상으로 존재하니 그 감정에 몰입하기 싫어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일까. 이제 그 감정은 주인을 잃고 흩어져 버렸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이야기 조각들을 붙들고, 다른 조각을 이어붙여 보강하고 나쁜 기억은 용서하고 편집한다. 이것이 사람이 죽고 나면 훨씬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메카니즘이다. 이제는..그래도 괜찮다.
아버지가 겪은 세월은 대부분 그가 그리워하던 바다로 흘러갔을것이고 어떤 조각은 나에게 흘러들어 완만한 초승달 모양처럼 퇴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