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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May 29. 2017

[냉증과 열증 사이_01]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바람 때문도 아닌데

냉수족증? 아니, 수족냉증!


    저는 언니가 셋, 딸만 넷인 집의 '또 딸'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산 셈이죠. 태아 성별 감별 따위 없이 '낳아봐야 아는' 그 시절의 출산은 여러 가지 의미로 짜릿했을 겁니다. 나이 터울이 크게 지지 않는 딸 넷을 낳느라 안 그래도 힘드셨을 엄마는 마지막으로 나온 제가 아들이 아닌 바람에 세네 곱절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는 것이 저희 집안에 전설처럼 전해져 옵니다. 그 시절은 그런 시절이었죠. 또래의 언니들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작은 사회였어요. 이 형제관계야말로 제가 여성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중에 저와 다섯 살 터울이 지는 큰 언니는 어릴 때부터 손이 차가웠습니다. 언니가 슥 다가와 갑자기 등짝이나 목에 손을 쑥 집어넣으면 동생들은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오르곤 했지요. 손발이 차가운 언니를 두고 우리는 차가운 손발을 가진 병이라는 뜻으로 '냉수족증'이라는 없는 이름을 만들어 부르곤 했습니다. 사실 같은 증상을 일컫는 '수족냉증(手足症)'이라는 실제 이름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요. 손발이 시린 증상에 시달리는 것이 비단 울 큰언니뿐만은 아니라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시절입니다.

안그래도 잘 놀라는 저는 펄쩍 뛸 만큼 놀라곤 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남편에게 곧잘 합니다. 흐흐.



차가운 손발, 당연하다고 느끼시나요?


    저도 20대 때 손발이 차가운 편이었습니다. 배 아플 때 만져주는 엄마 손은 항상 따뜻한데 난 왜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지요. 하다못해 남편과 처음 만나 사귀었던 시절 프로포즈 멘트가 '너의 차가운 손을 내가 잡아줄게' 였을 정도니까요.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남편의 손도 늘 따뜻했습니다. '오빠는 손이 어쩜 이렇게 따뜻해?'라고 물어보면 '마음이 따뜻해서 그래' 같은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지요.


    이것은 그저 작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실상 손발이 시린 증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대략 3:2의 비율로 더 흔하게 나타납니다. 서양 여성보다 동양 여성이 더 빈번하게 겪는다고도 하지요. 또 일생 중에서 가장 이 증상을 호소하는 연령대가 20~30대라고 합니다. 그러니 20~30대의 동양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아주 높은 확률로 냉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손이 좀 차갑다고 뭐가 대수일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연령에 따라 정상체온의 범위가 다르듯이 건강한 몸이라도 부위에 따라 체온이 다르긴 합니다. 우리가 체온이라고 부르는 것은 귓속이나 입안과 같은 몸속 깊은 곳의 심부체온이고 겉으로 드러난 피부나 신체 말단의 온도는 실제로 더 낮거든요. 하지만 차가운 손은 여자의 몸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신호등의 노란 경고등이 깜박깜박거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체온계를 생산하는 회사 '브라운(Braun)'에서 제시한 정상체온 범위



몸이 차다는 것의 의미


    몸 어딘가가 차다는 것은 거기에 따뜻한 혈액이 충분히 돌고 있지 않다는 뜻이겠죠. 환자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잘 드는 예 중 하나가 '예산 편성'입니다.


    우리 몸이 한 나라라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뇌가 정부고 신체 각 부분이 시도 지역이 될 겁니다. 뇌는 매일 매 순간마다 '혈액'이라는 예산을 편성합니다. 혈액은 세포를 먹여 살리는 산소나 양분을 날라주고 노폐물도 제때 수거해주어야 합니다. 여기저기 다 많이 보내주면 좋겠지만 예산은 어디까지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필요한 부분에 많이, 적어도 되는 부분에 적게 보낼 수밖에 없겠죠. 


    혈액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은 아마도 뇌 자신일 겁니다. 잠시라도 공급이 안되면 나라가 망해버리거든요. 그리고 심장, 신장과 같이 늘 일해야 살 수 있는 필수적인 장기 체온유지, 호흡과 같은 생명유지활동도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케바케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소화시키기 위해 위나 장에 많은 혈액을 보내야겠죠. 늦잠 잔 아침 지각할 위기에 처했다면 다리 근육에 집중적으로 보내서 전속력으로 달려야 합니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이면 해독하느라 바쁜 간과 신장에 몰아줘야죠. 실시간으로 바뀌는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 편성은 칼같이 진행됩니다. 

몸은 기가 막히게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입니다. 자비 없는 우선순위가 존재하죠.


    여성의 가임기라는 것은 주기적으로 출혈이 있다는 뜻이지요. 즉 예산 자체가 적습니다. 예산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선순위가 낮은 것부터 버리게 되어 있어요.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 - 이를테면 피부의 윤기라든지 머리카락, 손발톱 같이 몸의 말단에 있는 것들이지요. 손발은 몸의 끝이고 혈액을 펌핑해주는 심장에서 가장 멀리 있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받기가 언제나 불리합니다. 또 예산이 늘 적게 가는 곳은 큰 금고를 설치할 필요가 없겠지요. 혈액이 잘 오지 않으면 혈관이 수축-확장을 하는 운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혈관운동성이 떨어지면 혈액은 더 오지 않게 됩니다. 악순환이지요. 손발의 혈관운동성을 주기적으로 제고해주지 않으면 수족냉증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족냉증과 자궁냉증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자궁과 난소는 어떨까요? 여자 몸에서 자궁과 난소는 매우 중요한 장기이긴 하지만 '생존'의 측면에서 보면 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관여할 뿐이기에 극단적인 경우 적출해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장기지요. 이 경우 몸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면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게 됩니다. 평소 생리가 규칙적인 사람도 몸이 너무 힘들 때는 생리를 거르게 되곤 하잖아요? 사실 이 부분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면 발기가 잘 안 되는 것과 같은 경우예요.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손발이 찬 사람 중에 아랫배가 찬 사람이 많습니다. 제 경험으론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한의학에서는 아랫배를 '단전(丹田, 붉은 밭이라는 뜻입니다)'이라 부르고 인체의 양기가 모이는 곳으로 본답니다. 아랫배를 따뜻하게 하면 몸 전체가 훈훈해지는 이치가 여기에서 비롯되지요. 즉 손발이 찬 것은 표증일 뿐, 본질은 아랫배가 차가워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혈류가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당연히 해당 장기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가깝게는 생리통, 덩어리 진 생리혈, 월경전 증후군과 생리불순일 뿐이지만 오래되면 자궁근종이나 난소낭종, 난소 기능 저하와 같은 무시무시한 결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단전은 대략 '배꼽아래 세 치'를 이른다고 합니다. 배꼽과 그 아래 단단한 뼈(치골) 사이가 다섯치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제가 겁을 준다고 느끼시나요? 


    맞습니다. 손발이 찬 걸 당연하게 여겼던 20대의 저에게 할 수만 있다면 있는대로 겁을 줬을 겁니다. 무심히 넘기지 말라고 따끔하게 충고했을 거예요. 한겨울에도 맨발에 플랫슈즈만 줄창 신고 다녔던 저에게, 살만 찌지 않으면 운동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저에게, 멋을 위해선 얼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저에게, 혹은 바로 지금의 당신에게.




(냉증과 열증사이, 두 번째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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