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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20. 2017

너무 빨리 여자가 되어버린 아이

우리 아이 성조숙증

어른들은 모르는 요즘 아이들의 문제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요즘 아이들'이란 불가해한 존재입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 문자를 해독했더니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유명한 얘기도 있죠. '이미 어른'과 '요즘 아이'의 간극이란 어느 시대에나 유효했던 모양입니다. 나도 한때 '어른들은 우릴 이해 못해'라고 생각했던 요즘 아이였다는 사실은 어느샌가 잊히고 나와는 다른 신체, 다른 생각, 다른 문화를 가진 요즘 아이들을 보며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죠. 

이 그림은 실제와 다릅니다.jpg


    몸에 대해서도 그 간극은 존재합니다. 저 역시도 주변에서 다리는 길고, 머리는 작고, 속눈썹은 인형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한국인의 신체적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유전자에다 무슨 짓을 한 거니. 서구화되는 비율도 비율이지만,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고등학생처럼 성숙한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도 있고 아빠만큼 키가 크고 수염이 듬성등성한 6학년 남학생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육 자체가 남다르기도 하거니와 급속 성장하는 시기 자체가 달라진 탓이겠지요.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는 빠릅니다. 부모는 당신 세대와 달라진 자녀들의 빠른 성숙을 낯설어하지만 성장이 빠른 건 우리 아이뿐만은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도 사춘기가 시작되는 연령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여성의 초경 연령으로 비교해보면 연구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1960년대생은 15-17세였고 1980년대생은 13-4세, 90년대생 이후부터는 평균 12세 전후라고 하니까요. 엄마는 고등학생 때 시작한 초경을 내 아이가 초등학교 때 시작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우리 아이의 사춘기,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사춘기는 성장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어린이'였던 아이는 '남자'와 '여자'가 됩니다.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의 축이 완성되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이고 그 과정을 통해 성 기능을 온전히 갖추게 되는 거죠. 살면서 두 번째로 겪는 급속 성장 시기이기도 합니다(1차 급속 성장기는 만 3세까지죠). 성장의 관건이 되는 이 시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이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유전적 요인만큼이나 환경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점차 사춘기 시작 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겠지요. 


    사춘기 시작 시기가 빨라지면서 성조숙증에 대한 우려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성조숙증으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아동은 2006년보다 2010년에 약 4.4배, 2010년보다 2015년에는 약 2.7배 증가했습니다10년간 도합 약 12배. 최근 유소년 인구(0~18세)가 점점 줄고 있는 걸 감안했을 때 환자의 비율은 환자수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성조숙증에 들어가는 진료비도 1년에 평균 67%나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1) 2)


   성조숙증은 '2차 성징이 평균치의 2 표준편차보다 빨리 나타날 때'로 정의됩니다무슨 말인지 저도 어렵습니다. 좀 더 통용되는 설명으로 풀면 '여자는 유방 발달이 8세 이전, 남자는 고환 발달이 9세 이전에 나타나는 경우'에 진단할 수 있죠. 전 세계적으로 사춘기 시작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고 인종마다 다른 연령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우리나라에서도 이 기준을 준수해서 진단하고 있습니다. 80년대생인 제 기준에서는 초등학생(!!) 때 벌써 2차 성징이 온다는 게 놀랍기만 한데 진단기준은 그보다도 훨씬 어린 거죠. 

제가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제 미래의 딸에게 문득 미안해지네요. 엄마도 다 아는 건 아니란다...



너무 빨리 여자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성조숙증은 호르몬의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중추성과 증상만 나타나는 가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에게서 더 흔하게 관찰되는데 시상하부-뇌하수체-성선 축이 남자보다 여자아이에게서 더 쉽게 활성화된다고 하죠. 초등학교 때 여학생들이 빨리 어른스러워지는 데 비해 꼬꼬마 같은 남자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갑니다. 한편으로는 남자아이의 고환 발달보다 여자아이의 유방 발달이 눈에 더 잘 띈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겁니다. 보고되는 비율 자체가 많은 거죠.

여자아이들에게 수영을 시키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의 발육을 관찰하기 쉽기 때문이죠.


    성조숙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아이의 성장에 관여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겁니다. 성장클리닉에서는 여자아이의 경우 만 3세 이후부터 사춘기 직전까지를 일반 성장기, 사춘기의 징후가 나타날 때부터 초경 이전까지를 급속 성장기, 초경 이후를 감속 성장기로 분류합니다. 초경을 시작한 뒤라도 키가 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키가 자라는 속도가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것이 정설이지요. 그렇기에 성장클리닉에서는 사춘기 시작 시기와 초경 시기를 민감하게 가늠합니다. 


    2차 성징을 일찍 경험한다는 것은 그러나 성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여러 질환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인데요. 여성호르몬의 자극에 더 빨리, 더 오래 노출됨으로써 유방암의 발생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고 향후 비만이나 고혈압, 2형 당뇨병과 같은 질환의 위험도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해져서 행동장애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위험도 높아진다고 보고된 바 있지요.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시작된 질병이기에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위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무서운 지점이지요. 



성조숙증, 왜 생겨나고 어떻게 관리할까


    성조숙증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중추성과 그와 무관하게 증상만 나타나는 가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만 중추신경계의 종양으로 인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짐작 가는 원인이 있다면 서구화된 식단에 기인한 소아 비만의 증가,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한 성적 자극에의 노출, 몸에 들어와 마치 호르몬인 양 행세하는 '환경호르몬' 등을 들 수 있겠지요. 성장을 위해 복용하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약물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생활관리

    가장 먼저 관리해야 할 것은 아이의 체중입니다. 사실 어른의 다이어트보다 열 배는 어려운 게 아이의 다이어트죠.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동물성 단백질과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해야 하는 것이 아이들의 식단이기 때문에 소아비만을 치료하는 것은 더디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의 식습관을 관리할 때에는 식단뿐 아니라 조리법이나 음식을 먹는 순서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데, 고른 영양소를 갖춘 식단을 준비하되 같은 식재료라도 기름이 적혀 굽고 튀기는 조리법은 금물, 칼로리가 낮은 음식에서 높은 음식의 순서로 코스 별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환경호르몬 역시 큰 문제입니다. 플라스틱에서 분비되는 프탈레이트(phthalates), 염화 바이페닐(polychlorinated biphenyles), 비스페놀 A(bisphenol A) 등이 대표적인 내분비 교란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은 한꺼번에 치명적으로 노출되는 일은 적지만 영유아기부터 꾸준히 접촉하는 일이 늘면서 사춘기 발달에 영향을 준다고 하죠. 분유를 젖병으로 수유하는 아이들의 경우 혈중 비스페놀 A 농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알려진 성분이 없는 용기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신소재가 늘어남에 따라 환경호르몬의 종류도 함께 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우리 주변에는 호르몬도 아니면서 호르몬인 척 하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합니다. 수용체는 그들을 거부할 수 없지요.


투약과 치료

    서양의학에서는 성조숙증 아이들에게 성선 자극 호르몬의 분비를 일시적으로 막아주는 주사제를 처방합니다. 이 주사제는 1981년 처음 사용된 이래로 널리 쓰이고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여자아이의 경우 9세 이전에 시작해 11세 이전까지만, 남자아이는 10세 이전에 시작해 12세 이전까지만 보험이 적용됩니다. 호르몬 제제는 어느 경우든 선명한 득과 실이 있습니다.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이 보험에 적용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비용의 문제를 떠나 득이 실보다 크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신 그 연령을 벗어난 경우에는 득실을 판단하기 어려우며, 득 보다 클지도 모르는 '실'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는 뜻이지요. 성장호르몬이 특정 질환에 대해서만 보험 수가가 인정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의학에서도 성조숙증 치료를 위해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은 중의학 쪽입니다. 중국은 서의와 중의(우리나라의 양방과 한방과 유사한 개념)가 공존하고, '중체서용(中體西用)'으로 양약과 한약이 비교적 자유롭게 병용되기에 서로 치료를 비교한 논문도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습니다. 양방의 지표를 사용해 한약과 서양의학 치료 효과를 측정한 결과 한약 치료 효과가 60% 이상, 한양방을 결합한 치료 효과가 77% 이상이라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습니다.3)




    이 글은 '달과궁 프로젝트'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의 여자에게 생길 수 있는 질환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이미 수십수백년 전부터 겪어온 월경과 폐경 사이의 어떤 이벤트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이름 붙여진 질환이기에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아직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겪게 될 질환이기에 더 무겁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일 거예요. 



1) 이영준, and 이기형. "성조숙증의 개요와 치료." Journal of the Korean Medical Association 58.12 (2015): 1138-1144.

2)최규희, and 박승찬. "통계자료를 통한 국내 성조숙증 진료현황 분석." 대한한방소아과학회지 30.4 (2016): 60-65 

3) 권지현, 이승현 and 유선애. "성조숙증 치료에 대한 임상 연구 동향." 대한한방소아과학회지 31.1 (2017): 63-73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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