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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13. 2017

자궁적출이 그리 쉬운가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기는 없다

장기를 떼어낸다는 것에 대하여


    어린 시절 체육 시간에 운동하다 말고 배를 잡고 쓰러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둘러싸고 발만 동동 구르던 우리는 선생님 등에 업혀 병원으로 달려갔던 친구의 병명이 '맹장염'이라는 사실을 오후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요. 맹장이라는 곳에 염증이 생겨 수술로 떼어냈다는 친구는 파리한 얼굴로 병실에 누워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얼마나 아팠건 말건 우리는 학교도 나오지 않고 바나나와 파인애플 통조림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친구를 남몰래 부러워했었습니다. 

'수술'이란 걸 하고 누워있는 친구는 대단해보였습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시선은 바나나에 꽂혀있었죠).


    맹장염은 그렇게 우리에게 친숙한 병명이 되었습니다. 맹장이란 장기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면서 '염증이나 생기는 몹쓸 장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밥에 있는 돌을 씹어먹으면 맹장염에 걸린다더라'는 식의 부정확한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맹장이 장 끝부분에 흔적처럼 달려 있는 충수돌기를 이르는 말인 걸 안 건 나중의 일이고요. 친구에게 닥친 왠지 부러웠던 일은 아,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도 살 수 있구나, 심지어 떼어내야만 건강한 장기도 있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은 몸에서 뭔가를 떼어내는 수술이 익숙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담낭을 떼어낸 삼촌, 갑상선을 떼어낸 사촌언니, 위를 절제한 큰아버지, 유방을 절제한 이모, 그리고 자궁을 적출한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지요. 몸에서 장기를 들어내는 일이 자연스러울 순 없습니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장기 절제술은 외과 수술의 눈부신 발전과 정밀해진 진단 기술이 만나 '더 심한 질환'을 차단하기 위해 빚어낸 필요악의 결과여야 합니다. 과거의 의술이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이고 꼭 필요한 순간에만 시행되어야 할 일이지요. 


    이 글은 그중에서도 여자의 자궁을 적출하는 일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백 선생이 스무 살 이금자에게 말하지요. "세상에는 좋은 유괴와 나쁜 유괴가 있어." 백 선생은 천하의 개잡놈이지만 자궁적출에 대한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자궁적출과 나쁜 자궁적출이 있습니다. 이 글은 혹시 우리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쁜 자궁적출'에 관한 기우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자궁적출과 나쁜 자궁적출이 있다


    장기를 절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암'입니다. 암은 인근의 장기로 전이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어느 위치엔가 암이 생기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지요. 암 치료에 대한 접근도 다각도로 재조명되고 있긴 하지만 암이 발생한 부분을 절제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암환자에게 제 1의 선택지입니다. 또는 복막염이나 장기 천공으로 진행될 수도 있는 맹장염처럼 방치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될 때에도 절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앞의 두 경우가 아니라도 그냥 두었을 때 삶의 질이 심각하게 저해되는 경우에도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자궁적출술 비율은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등입니다.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자궁 적출 수술이 매년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가장 큰 원인은 '자궁근종'이라고 하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의하면 2016년 자궁근종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약 30만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무려 60% 이상 증가되었다고 하니 근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높아진 거겠지요. 치료 경과 중에 근종의 개수가 많거나 크기가 크고, 임신의 경험이 있다면 으레 자궁적출이 치료의 선택지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좋은 자궁적출일까요, 나쁜 자궁적출일까요?


    2015년 'SBS 스페셜'에서 방영된 <병원의 고백 1부 '너무나 친절한 의사들'>1) 편에서 사소한 이유로 자궁적출을 감행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궁은 없어도 그만인 쓸모없는 기관이니 적출해버리자며 권유를 많이 한다"거나 "혹 10개를 떼는 건 수술이 오래 걸려서 자궁 하나 뚝딱 잘라버리는 게 더 효율적이다"라는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고백은 충격적입니다. 단지 심한 생리통이나 많은 개수의 자궁근종 때문에 자궁절제술은 가볍게 권장되곤 합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묻습니다. "더 출산할 계획이 있으세요? 없다면 큰 문제없잖아요?"

지인이나 환자분들로부터 비슷한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 적출 후유증으로 치료받으러 오시는 분도 계시고요.


    자궁과 난소는 분명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장기는 아닙니다. 비교적 인접 기관과의 연관성이 적은 독립적인 장기죠. 위에서 언급했던 삼촌의 담낭도, 사촌언니의 갑상선도, 이모의 유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암에 걸려도 떼어내면 비교적 쉽게 전이를 막을 수 있고, 없어도 생존에 문제는 없지요. 그렇다고 그게 쉽게 떼어내도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겁니다. 우리는 단지 '살아있기 위해서' 살아있는 건 아니니까요.



자궁절제술 권하는 의사의 네 가지 오류


    <자궁 적출의 속임수>라는 책의 저자인 스탠리 웨스트 박사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맨해튼의 유서 깊은 병원이었던 뉴욕 세인트 빈센트 병원의 부인과 및 난임 클리닉 과장이었던 2003년에 이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암이 아닌 이유로 행하는 모든 자궁적출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지요. 10년 이상 지난 오늘에도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야 할 만큼 '나쁜 자궁적출'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유감입니다.

<자궁적출의 속임수> - 부제는 '무수히 많은 자궁적출이 왜 불필요한가에 관한 진실, 그리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이 책에서는 무분별한 자궁 적출을 시행하는 의사들이 저지르는 오류를 네 가지로 꼽습니다. 첫 번째의사의 의학적 자기만족입니다. 환자를 위한 시술, 환자의 남은 일생에 미칠 여파를 고려한 시술이 아니라 시술 그 자체의 완성도를 위한 시술이라는 거지요. '이미 생긴 10개의 혹을 떼내는 것보다 자궁 하나를 적출하는 편이 깔끔하다'는 위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암이 생길지도 모르는 장기는 없는 편이 낫다고 진심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자궁 적출술의 잠재적인 여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독립적인 장기라고 해서 원래 있던 것을 떼어냈는데 아무렇지 않은 장기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근종과 같은 병리적인 요소에만 집중해서 몸이라는 복합적인 유기체에 미칠 전체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지요.


    세 번째는 여전히 만연해있는 의학적 성 차별주의의 반영입니다. 남자에게 고환을 제거하는 것은 '거세'라고 하여 매우 심각하고 무겁게 생각하는 데 비해 여성의 난소와 자궁 절제는 의학적인 측면만으로 가볍게 접근하는 경향은 분명 있습니다. 자궁암에 비해 확률이 적기는 하지만, 누구도 남자에게는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을 거면 암에 걸릴지도 모르는 고환 따위 없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 않지요.  


    네 번째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 부족입니다. 자궁적출의 가장 큰 후유증 중 하나는 여성으로서 상징적인 장기를 잃었다는 심리적인 상실감입니다. 자궁적출을 진행할 때 충분한 설명과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더 큰 심리적 상실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류는 '환자가 선택 또는 동의했다'라고 말하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권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지식과 정보의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와 내 자궁에 관한 모든 것


    그렇다면 자궁적출의 득실에 대한 계산은 정확한 것일까요? 정말로 자궁은 출산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떼어내는 것은 부담 없으며 남아있어 봐야 문제만 일으킬 장기일뿐일까요? 


    자궁적출은 자궁만 적출하는 경우와 난소까지 함께 적출하는 경우로 나뉩니다. 자궁만 적출하고 난소는 남아있는 경우에도 호르몬 분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자궁을 적출하면서 난소로 가는 혈류가 줄어 정해진 시간보다 빠르게 난소 노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 이유로 자궁적출은 난소와 자궁을 전부 절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기폐경의 원인이 됩니다. 조기폐경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완경보다 몇 배로 힘든 갱년기 증상(골다공증, 심혈관질환, 인지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지요. 


    이미 폐경이 된 여성의 자궁적출술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난소는 안드로겐의 중요한 공급원이 됩니다. 안드로겐의 감소는 노인 여성의 성욕 감퇴로 직결되지요.2) 또한 난소 절제 없이 자궁만 절제하더라도 대장암의 위험도가 30% 높아집니다. 대장암은 전 세계 여성의 암발병률 2위를 차지하는 암이지요. 난소 절제가 동반된 자궁적출은 높은 연령대에 시행할수록 대장암 발병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3) 하복부를 지지하고 있던 장기가 소실되면 주변의 근육을 받쳐주는 힘이 떨어지게 되고 요실금이나 방광, 직장의 기능 저하 역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궁 적출을 받으신 분들이 흔히 하는 '아랫배가 허전하다'는 얘기가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닌 거지요.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여성의 대표적인 장기를 상실한 데에서 비롯된 우울감입니다. 의사의 권위에만 기대어 수술하고 나면 적출 이전에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보지 못했다는 회한은 더 오래 남게 될 거예요. 똑같이 여성의 상징적인 신체 일부를 적출 또는 절제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스스로 선택했다면 후회는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몇 년 전에 그런 예를 분명히 목격했거든요. 



내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


    전 세계가 안젤리나 졸리의 가슴이 주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안젤리나 졸리의 이미 없어진 가슴'이었지요. 2013년 5월, 안젤리나 졸리는 <뉴욕타임스>에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4)"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합니다. 난소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3대째 물려받은 유방암 유전자 BRCA1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는 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먼저' 의뢰해서 분석한 다음 '스스로 선택한' 양측성 유방 절제술을 받고 그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기로 결심'하죠. 


    전 세계가 이 '사건'을 두고 설왕설래했지만 이건 그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할리우드 톱스타라는 사회적 지위, 막강한 재력, 그리고 스스로 유전자 검사를 시도해볼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의학적인 자기 결정권까지 갖춘 그녀였기에 가능한 길이었죠. 그녀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여성들도 내 경험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 그 여성들도 나처럼 유전자 검사를 받고 만약 위험도가 높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방안이 있음을 알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유방암으로 잃을 일은 없겠네요."


    이 뉴스가 전해진 뒤로 전 세계에 BRCA 검사건수가 급증하는 등 '안젤리나 효과'라고 불린 현상이 일어납니다. 저명한 유전학자이자 미국의 심장 전문의인 에릭 토폴은 자신의 저서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에 그녀가 제목으로 택한 'My Choice'라는 표현이 의료의 새로운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단순히 유전자 검사 결과로 암 발병률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나 예방적 절제술이라는 방법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의학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결정권이 개인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죠.5) 





    모두가 졸리처럼 행동할 수는 없을 겁니다그녀는 내추럴본 여전사. 하지만 내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는 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생각으로 인해 내가 원치 않았던 '나쁜 자궁적출'을 피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의학적 정보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저도 대부분의 논문을 구글학술검색에서 찾습니다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받는 우리는 내 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적출이 꼭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지, 적출하고 싶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믿음, 진료 수가 상승, 정보 불균형을 이용한 제약회사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말이지요.


    기억해주세요. 자궁은 그저 임신과 출산이 아니면 더 이상 필요 없는 장기가 아니라는 것을요. 치명적이지 않다면 내 장기를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선택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있으려면 나에 관한 의학적 정보는 의사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1) SBS 뉴스, 자궁적출술 OECD 1위…의사들이 말하는 '비밀' - 원본 링크

2) Laughlin, Gail A., et al. "Hysterectomy, oophorectomy, and endogenous sex hormone levels in older women: the Rancho Bernardo Study." The Journal of Clinical Endocrinology & Metabolism 85.2 (2000): 645-651.

3) Luo, Ganfeng, et al. "Risk of colorectal cancer with hysterectomy and oophorectomy: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International Journal of Surgery 34 (2016): 88-95.

4) "My medical choice" by Angelina Jolie, NY times  - 원문 링크

5) 에릭 토폴,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환자 중심의 미래 의료 보고서>, 청년의사, 2015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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