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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06. 2017

조기폐경을 걱정하는 당신에게

때 이른 폐경을 막는 네 가지 방어전략

너무 이른 이별은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삶에서 운명을 그다지 믿는 편이 아니지만 자연의 흐름에는 거스를 수 없는 '제 때'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얼음이 얼고 개구리가 뛰어오르는 '그때',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오르고 어딘가 털이 나며 월경을 시작하고 또 끝내야 하는 '그때'. 와야 할 때에 오고 가야 할 때에 가는 것, 이 단순함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입니다. 몸으로서 그것은 '건강'이 되고 제 때에 오지 않거나 가야 할 때 가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병리'가 되겠지요. 

학교다닐 때는 저도 꽤 문학소녀였습니다만, 져야할 때를 알고 지는 낙엽의 아름다움은 지금 더 잘 알죠.


    아직 가야 할 때가 아닌데 가버려서 병이 되는 대표적인 증상이 '조기폐경'입니다. 제 때에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마무리되는 월경을 '완경'이라고 한다면 아직 때가 오지 않았는데 중단되는 조기폐경은 '불완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로 맞이한 이별은 후폭풍도 거셉니다. 안면홍조, 정신장애, 수면장애 등 완경 때 겪는 갱년기의 증상들은 조기폐경 때 강도가 훨씬 더 세다고 하지요. 결합조직의 소실이 더 빨리 시작되어 장기간 이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골다공증이나 심혈관질환의 위험에도 더 크게 노출됩니다. 


    의학적 진단에서 조기폐경을 가늠 짓는 나이는 만 40세입니다. 하지만 만 40세가 넘었다고 해서 폐경이 자연스럽다고 하긴 어렵지요. 40대 초반도 아직 월경과 헤어지기엔 이른 나이거든요. 숨겨진 숫자가 많아 정확하진 않다고 하지만 산부인과 통계에 따르면 20대에는 만 명에 한 명, 30대에는 천명에 한 명, 40대에는 100명의 한 명이 이른 폐경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여성 인구가 약 80만 명이라고 볼 때(801,758명, 만 40세~49세, 2015년 통계청 기준) 1퍼센트는 약 8천 명에 달하지요. 이 수치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40대의 이른 폐경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 '조기폐경'을 다루려고 합니다. 



임신과 출산이 없는 난소는 열일 중입니다

    조기폐경을 지금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이유는 저출산과 비혼의 흐름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 결혼과 상관없이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낳더라도 매우 늦게 한 명만 낳는 여성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임신 및 출산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것은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큽니다. 이 흐름이 갑자기 달라질 리는 없기에 그 사이 여자의 몸에 일어나는 일을 조금 더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더 정확히는 임신도 출산도 하지 않는 난소와 자궁에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오지랖을 유난히 질색하는 한 친구에게 누가 '결혼하니까 뭐가 제일 좋냐'라고 물으니 '결혼을 (또) 안 해도 된다는 거'라고 대답하더군요. 임신해서 좋은 점은 '임신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난소와 자궁에게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는'휴가'거든요. '임신을 준비하라'라고 독촉하는 호르몬의 등쌀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운 이 시기에 난소는 배란을 쉬고 자궁은 내막이 증식과 탈락을 반복하는 과정을 쉽니다. 반대로 임신기간이 없는 몸의 난소는 35년간 휴가 없이 내쳐 일하는 중인 셈이지요. 


    젊어서 너무 일을 많이 하면 나이 들어서 일이 하기 싫습니다인지상정. 난소의 노화도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진 개수의 난자를 차례차례 준비해서 내놓는 것이 난소의 일이기 때문에 35년간의 긴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지치는 것도 당연한 셈입니다. 게다가 난소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요인만큼 후천적인 요인도 커서 참견하고 훈수를 두는 '환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점점 심해지는 스트레스, 일 때문에 흐트러진 생활리듬, 1인 가구가 늘면서 생기는 영양의 불균형, 다이어트와 비만 사이에서 깨져버린 체지방의 밸런스까지. 여자의 난소는 시어머니가 열두 명인 며느리입니다.


난소에게 참견하고 싶어하는 시어머니는 점점 늘어만 갑니다. 피곤해서 살 수가 없다고요.



조기폐경을 걱정하는 이들을 위한 네 가지 방어 전략


    진료를 하다 보면 '혹시 지금 조기폐경이 오고 있는 건 아닐까요'라고 걱정하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최근 다른 부서로 승진 발령을 받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40대 초반의 싱글 직장인, 스피닝과 피티를 반복하며 인바디에서 체지방 그래프가 줄어드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는 30대 후반의 주부, 낮밤 없이 중장거리 비행으로 하와이부터 북유럽까지 종횡무진하는 30대 중반의 승무원. 이들에게 어느 날 찾아온 '월경 없는 몇 달'의 두려움은 큽니다. 스스로의 몸에 관심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들이 '진단 가능한 조기폐경'일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단기간의 무월경은 조기폐경이 아니고 원인을 해소하면 대부분 돌아오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방심할 수도 없습니다. 30대 중반 이후는 난소의 노화가 촉진되는 시기이고 이 시기에 월경이 없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신호는 아니거든요. 임신, 출산, 수유로 인해 생리적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모종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해 만들어진 무월경은 몸이 보내는 강력한 구조요청 신호입니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지요.


내 월경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들

    월경주기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려면 평소 월경이 규칙적인지 파악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자신의 월경 주기를 모르는 분들도 의외로 많은데요. 월경주기에 대한 파악은 여자의 건강 체크에 기본입니다. 기백만원짜리 건강검진 결과보다 훨씬 중요해요. 주기는 일정한지, 며칠 주기인지, 생리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한 주기에 패드를 몇 개나 쓰는지(생리양) - 이 네 가지만 파악해두면 어지간한 변화는 바로 눈치챌 수 있습니다. 

매달 월경이 끝나면 습관적으로 이 네 가지를 기록해보세요. 내 건강에 대해 무엇보다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원래 규칙적이던 월경이 한 주기를 건너뛸 만큼 길어진다면, 특히 예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면 이 작은 위기신호를 포착해야 합니다. 원인은 뭘까요? 내 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임신일 수도 있고, 영양 부족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일 수도 있습니다. 체중의 급격한 증가나 감소일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다음 주기에는 돌아오겠지만 그 이후 적어도 3번의 월경주기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위의 네 가지 체크리스트에서 기존의 월경 양상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지요. 


    만약 3번의 주기 동안 월경이 없다면 즉시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도 미처 잡아내지 못한 내 몸의 경고를 '몸의 전문가'와 함께 파악해서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지요. 가장 먼저 잡아내야 하는 것은 여성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뇌 혹은 다른 장기의 이상입니다. 그것을 배제하고 나면 몸의 디테일한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거든요. 불규칙한 생리주기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 조기폐경을 걱정하는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적은 체지방 vs. 많은 체지방, 여자 건강의 필요악

    50대의 갱년기는 피해야만 하는 시기일까요? 60대의 고혈압은 단지 무서운 질병일까요? 50대에 갱년기는 괴롭지만 갱년기가 없다면 만년에 여성암에 노출되기 쉬울 거예요. 60대에 고혈압은 지나치면 문제가 되지만 이전처럼 낮은 혈압으로는 노화된 몸 구석구석까지 순환이 안 될 겁니다. 둘 다 극단적인 경우만 경계하면 될 뿐, '올 때에 와야 하는' 것들 중 하나지요. 


    가임기 여성에게는 체지방이 딱 그런 존재입니다. 모두가 체지방을 공공의 적으로만 규정하지만 체지방이 극단적으로 없는 경우 무월경이 찾아옵니다. 일례로 체지방량이 적은 여자 운동선수에게 적용되는 세 가지 징후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식단 조절로 인한 1. 식이장애가 2. 무월경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3. 골다공증이 악화되는 경우지요. 반대로 체지방이 너무 많아도 무월경이 옵니다. 다낭성 난포 증후군, 요즘 여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질환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비만과 무월경이거든요. 


    체지방 세포는 생식세포도 아니면서 에스트로겐을 분비하는 일종의 내분비 기관으로 작동합니다. 때문에 너무 많아도 혹은 너무 적어도 문제가 되고, 단기간에 체지방량이 급격하게 변해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요. 비만을 방치하는 것도 문제지만 체지방률이 한자리 숫자에 수렴하도록 지나치게 운동하는 것도 건강해지는 길만은 아닌 셈입니다. 이 경우 '보이는 아름다움'은 차치해야 될 문제가 됩니다. 

체지방이 아무리 미워도 영영 헤어지진 마세요. 그렇다고 너무 많이 데려가서도 안됩니다.


20대와는 달라진 몸을 위한 생활 리듬 점검

    누가 그러더군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라임처럼 되풀이되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라고요. '예전에는 하룻밤쯤 새도/소주 두병쯤 마셔도/사흘 연속 야근해도/( ...... )각자 예전의 내 모습을 괄호 안에 넣어보세요 끄떡없었는데'.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것,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안 그런 것은 해가 지면 밤이 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합니다. 내 나이를 가장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과거의 내 체력에 대한 맹신을 버리는 것이죠. 30대는 30대에 맞게, 40대는 40대에 맞게 하루하루의 세팅을 조정해야 합니다. 


    여자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이고 무리 없는 월경은 여자 건강의 척도이기 때문에 월경에 이상이 왔다면 반드시 생활에 무리가 있는 거예요. '예전에도 똑같이 지냈는데 괜찮았어요!'라고 대부분은 억울해하시지만 생활이 같아도 그걸 따라가는 내 몸은 똑같지가 않답니다. 공격적으로 일했던 알파걸이라면 업무의 로딩이 무리가 있지는 않은지 체크해야 하고 20대 때와 같은 운동을 같은 강도로 지속하고 있다면 내 근육과 관절의 건강을 확인해야 하죠. 불규칙한 월경은 지금 당신의 생활에 무리가 있다고 경고하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시상하부를 지배하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관찰하라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이유는 뇌를 지배하기 때문이에요. 월경주기를 조절하는 세 기관의 축인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가운데 시상하부는 정신적인 충격이나 감정적인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재난 사고의 피해자 여성에게서 월경이 멈추거나 아직 시기가 아닌데도 출혈이 비치는 일은 흔하게 보고됩니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치료제로 무월경을 치료하기도 하지요.


    최근 급격한 생활 패턴의 교체나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정신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은 일은 없는지 돌아보세요. 받고 싶어서 받은 게 아닌지라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기는 무척 어렵지만 '아, 내가 그 일로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에 변화가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인식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답니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위대한 첫 단추니까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은 없습니다. 그런 일 없다고 성급하게 도리질 치기 전에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제를 동원해 나 자신마저 속여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해요. 마음이 부정하는 동안 타격은 몸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인정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답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버려둔 스트레스는 쌓이고 쌓이다 언젠가 폭발합니다. 다치기 전에 토닥토닥, 돌아봐주세요. 

 

그리고 수술적 폐경에 관하여

    폐경에는 '때가 되어 찾아온 완경'이 있고, 피치 못할 질병으로 자궁과 난소를 적출한 뒤 찾아오는 '수술적 폐경'이 있습니다. 대부분 자궁 난소를 전부 절제할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일상생활에 무리가 올 만큼 자궁이나 난소의 병변이 커져있을 경우도 수술의 대상이 됩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삶의 질을 보존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지요. 


    수술로 인한 인위적인 폐경은 차후의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여성호르몬을 담당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축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몸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변화에 적응하느라 훨씬 더 심한 갱년기를 맞이할 수 있거든요. 폐경 이후 호르몬 요법은 득과 실이 공존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장 적합한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자에게 월경의 끝맺음은 필연입니다. 요는 언제 어떻게 끝내느냐 하는 문제일 거예요. 난소의 노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무월경이 지속되면 조기폐경에 대한 걱정으로 대부분의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가 오히려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글은 '조기폐경' 그 자체보다 '조기폐경을 걱정하는 것'을 위한 글일 겁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내 몸의 현재 스코어를 인식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외부요인들을 파악한다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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