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월경은 어디까지가 보통일까
그 시절 우리는 생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호부호형을 못해 서러운 홍길동처럼,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볼드모트처럼, 생리나 월경이라고 말 못하고 '그날'이라 에둘러 불렀다. 하물며 디테일에 대해서 시시콜콜 말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마법에 걸렸느니 대자연이니 하면서 우리의 건강에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길고 반복된 시간을 외면하고 우회했다.
겪어본 사람들끼리는 아니까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알지? 알지, 암호같은 눈짓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서로의 생리가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얘기했어야 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한테는 설명해도 모를 것 같아서 할 말이 없었다. 하루키의 소설 <1Q84>의 대사처럼 설명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사실 설명해도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믿었다. 섣불렀다. 남자사람친구와 남자친구와 남편에게, 남자 선생님에게, 남자 사수와 상사에게 이게 어떤 종류의 불편이고 얼마나 큰 고통인지 설명했어야 했다. 이해시킬 자신은 여전히 없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건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우리는 더 크게 얘기했어야 했고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서 이야기되지 않아야할 소재라는 것에 대해 은연 중에 동의하지 말았어야 했다.
서로 생리에 관해 말하지 않으니 어딘가 이상해도 알 길이 없었다. '이상(異常)'하다는 걸 알려면 '정상(正常)'이 뭔지를 알아야 했지만 그러기 위해 서로의 상태를 공유하고 비교하거나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문제가 있는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그렇게 십수년 간 심한 월경전증후군, 진통제 없이 진정되지 않는 생리통, 과다한 출혈과 생리 때마다 쏟아지는 덩어리들을 겪었다. 스스로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십대의 나는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몰랐다.
그래도 요즘은 좀 다르다. 요즘의 10대와 20대는 산부인과 진료도 비교적 일찍 경험한다. 진료실에서 만난 어떤 이십대 여자 환자는 생리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더러 자궁경부암이 뭔지도 알고, 관계를 가질 때 통증이 심한 것이 문제가 있지 않나 의심도 할 줄 알고, 세균성 질염이 반복되면 남자친구나 파트너를 끌고가 같이 성병 검사(STD 검사,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Testing)를 해봐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감개가 무량했다! 그녀는 20년 전의 나보다 훨씬 낫고, 인류는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생리할 때 아픈 게 당연한 줄 알고 월경전증후군을 무심하게 넘긴다. 혹은 관심이 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 생리통이 심하다면 얼마나 심한 건지, 이게 도대체 월경과 관련된 증상이 맞긴 한 건지도 모르고 지나친다. 우리의 생리는 각자 출혈의 양도, 출혈이 일어나는 기간도, 출혈의 색과 통증과 월경전증후군의 종류도 다 다르지만 다르면 뭐가 얼마나 다른 건지 알 수 없고 무엇 때문에 달라지는지도 미지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의 범위는 너무 넓고, 나의 생리가 어디까지 보통이고 어디서부터 이상한지 생각하지 않는다.
진통제로 통증만 없애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진통제가 듣지 않는다. 남들은 괜찮다는데 나는 생리 전에 마치 미친사람 같다. 생리 양이 너무 많아 한달에 하루는 물리적으로 외출이 불가능하다. 생리를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에 검고 찐득한 찌꺼기가 며칠씩 이어진다. 원래 갖고 있던 편두통이, 소화장애가, 체력의 저하가 생리 때만 되면 심해지고 반복된다.... 바빠서, 몰라서, 검사에서 별 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덜 준 사이 몸의 변화는 점차 누적된다.
그러니 신인류여, 여러분은 조금만 더 몸이 건네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를. 소소한 변화가 ‘이상’을 거쳐 저 멀리 ‘비정상’까지 가버리기 전에.
진료실을 찾아주었던 환자들은 대부분 아픈 것 이상으로 지쳐 있었다. 불안하거나 무기력해보이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서, 혹은 적용해본 해법들이 죄다 오답만 도출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치료를 찾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적어도 '더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 검사 상 이상이 없어도 불편은 실재하고, 이상이 있어도 그게 전부는 아니며, 아픈 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답을 찾게 될 확률이 높다. 적어도 그 과정에서 월경을 통해 내 몸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테니.
사람들이 겪게 되는 불편을 매일같이 듣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내가 하는 진료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월경은 여자의 몸을 들여다보는 아주 유용한 현미경 중 하나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단순히 생리통이나 월경전증후군처럼 진단된 병명으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도 월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몸에 대한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생리는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가 '이상'한 상태일까. 월경과 관련된 '건강'과 '질병'의 경계가 어디일까. 책과 자료를 통해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실제 환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게 전부가 아니듯 내게도 정답은 없지만 아마도 숱한 오답 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찾는 '아주 보통의 월경'이 있을 것이다.
(이미지출처: https://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