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에 대해 무엇이든 말해보자
나의 진료 상담은 오래 걸린다. 이전에 월급 받으며 일할 때에는 아침 회의 시간에 지적받는 일이 허다했다. 원장실로 불려 가 혼난 적도 있다. "원장님, 상담 시간은 10분 이내로 짧게 끝내주세요. 뒤에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잖아요." 어떤 선배로부터 일침도 들었다. "상담이 길다는 건 결국 잘 모른다는 거야. 알면 빨라. 딱 보고 진단이 나오면 질질 끌 필요가 없어."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지금은 원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운영팀에게 상담이 길어서 혼난다. 아직 한창 얘기 중인데 운영팀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진료실로 콜을 울린다.
예전에는 진료를 보는 일이 탐정의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단서를 촤라라 모은 다음 천재적인 두뇌로 추리를 거듭해서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희귀한 바이러스나 터져버린 혈관, 부러진 뼈를 찾아서 환자의 목숨을 구하라!! 그러나 점점 그런 드라마틱한 진단은 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 생활습관과 체질이 만나 이루는 만성질환을 호소했고 보통 범인은 단 하나의 대역죄인이 아니라 잡범 여럿이었으니까. 마침 한의학은 그런 질환을 치료하기에 탁월하다.
나에게 진료는 탐정의 추리보다 고고사학자의 역학조사에 가깝다. 환자가 겪고 있는 불편의 시공간을 얇은 핀셋으로 한 겹 한 겹 걷어내고 섬세한 붓으로 털어내어 연대를 파악하고 인과관계를 들여다본다. 단 하나의 답이 아니라 가장 적합도가 높은 가설을 도출하여 치료로 검증해 나간다. 아직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증상이나 과거력은 차트에 기록해서 곱게 넣어둔다. 환자 상태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을 때 치료의 방향을 수정하는 단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 이러니 상담이 금방 끝날 리가 있나.
월경 한 가지만 해도 조사해야 할 게 엄청나게 많다.
일단 그 자체로 주 호소 증상이 되는 월경통, 월경전증후군, 월경불순, 무월경, 희발월경, 과다월경, 희소 월경 등이 있다. 월경기에 동반되는 소화장애, 불면증,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도 있다. 이런 증상의 원인이 되는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자궁내막증, 자궁내막 증식증, 자궁내막 용종, 난소낭종, 난소 기형종, 질염, 자궁후굴 등 기저질환도 있다. 딱히 진단명은 없는데 월경혈에 덩어리가 너무 많이 섞여 나온다거나 월경 양이 갑자기 줄었다거나 월경 전후에 찌꺼기 같은 분비물이 많다거나 냉이 심하게 쏟아지고 질 소양감이 심하다는 것도 환자에게는 큰 불편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각자 증상이 시작된 시기, 중증도, 빈도, 지속기간을 체크해야 하고 평소 내 생활의 무엇이 그 증상을 악화시키는지 연관성도 파악한다. 한의학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말 중 하나가 '병이 아니라 사람을 본다'는 것이라서, 증상이 같아도 사람에 따라 원인이나 치료법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증상과 체질이 만나 상승과 하강을 이루는 패턴을 파악해야 단순히 증상만 잡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후의 판단과 지속가능성의 여부도 가늠할 수 있다.
게다가 월경에 관한 표현은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표현이 일관되기 어렵다. 일단 우리 모두는 내 월경하나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월경 양이 많나요? 통증은 어느 정도인가요? 생리혈은 무슨 색이죠? 하나같이 좋은 질문이 아니다. 월경 양은 당최 내가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비교할 대상이 없고, 통증의 정도도 민감한 사람과 잘 참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색깔은 팬톤 컬러칩을 펼쳐놓고 고르지 않는 이상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각각의 증상을 객관화할 지표가 필요하다.
월경을 어떤 기준으로 관찰해야 할지 네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각 기준에서 세부적으로 체크해야 할 항목과 공인된 '정상'의 기준, 실제로 환자들이 호소하는 현실적인 표현들도 함께 기록해보았다. 이 내용을 기준으로 나의 생리를 점검해 보고 나중에는 월경으로 진단하는 체질 유형을 MBTI처럼 진단해보자.
네 가지 기준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주기와 기간 ◆
(2) 출혈의 상태와 양
(3) 통증과 동반 증상
(4) 진단된 질환
다음 글에서 월경의 주기와 기간부터 순서대로 살펴보자.
*** 월경과 생리라는 두 가지 용어 중 실생활에서는 생리라는 말을 더 흔히 쓰는 경향이 있지만 정식 명칭은 월경이므로 앞으로의 글에서는 혼동이 있을 경우 대부분 '월경'으로 통일했습니다. '생리대'처럼 월경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경우에는 통용되는 그대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