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월경 (上)

나의 오랜 월경 이야기

by 미미최

중학교 2학년이 되고 1년 사이에 키가 15센티나 컸다. 그 해 말 초경을 시작했다. 언니 셋을 선배 삼아 관찰해 온 짬이 있었기에 어렴풋이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막상 일이 터지자 이만저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때까지 '피'라는 건 어디 좀 다쳐야만 볼 수 있는 무서운 것이었으니 당연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손가락에 점만 한 핏방울만 맺혀도 끙끙 앓으면서 난리법석("으어어 피다 피!!")을 피우는 남편을 보며 그때 내가 느꼈던 공포의 단면을 엿본다.


그날 집에 와서 우물쭈물하며 뭔가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담담하게 일러주셨다. 대부분 아주 실용적인 정보들이었다. 그건 월경이라는 건데 여자는 누구나 다 한다. 한 달에 사오 일은 피가 나올 거다. 생리대는 속옷 서랍 둘째 칸에 있다. 이렇게 떼서 이렇게 붙이면 된다. 아프면 말해라. 약 먹으면 된다. 이미 세 차례나 교육 경험이 있는 숙련된 교관으로서 엄마는 딸이 평생 업무에 참조할 핵심 정보를 간결하게 전수하셨다. 그날 이후로 딱히 부끄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뭐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은 사무적인 일로 월경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초경 이후 첫 이삼 년 간은 어쩌다 한번씩만 했다. 첫 해는 일 년에 서너번, 그 다음 해에도 두세 달에 한번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때는 석 달에 한 번 생리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랐고 한 달에 한 번씩 얼굴이 새파래져서 드러눕는 친구들을 보며 ‘어휴, 나는 가끔 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하고 생각했다. 고등학생도 신입생 티를 벗고 나서야 나의 생리는 '월경(月經)'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주기를 갖게 되었다. 십대 후반에 생리통이 심해졌고, 이십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는 월경전증후군이 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십대에 시작해 이십대와 삼십대에 폭풍같이 겪고도 그 의미를 잘 몰랐던 일은 사춘기, 청춘, 연애, 그리고 내게는 월경이 그랬다. 닥쳐와서 정신없이 겪었고 다들 그런 거라고 하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시간이 흘러 한의사가 되고 내 몸을 조금은 더 신중하게 들여다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이제는 모든 여자의 몸에 매달 일어나는 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대학 새내기 때 엄청난 미모로 교내에서 이미 유명했던 학교 선배가 있었다. 언젠가 그 선배가 길거리 캐스팅으로 생리대 광고를 찍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름다운 언니들이 산뜻한 미소와 함께 화사한 햇살 속을 걷다가 신나게 놀이동산을 향해 달려 가는 내용이었다. 여러 일반인 모델이 등장한 시리즈로 화제가 된 그 생리대 광고에서는 예쁜 언니들이 주로 흰 치마나 흰 바지를 입고 깨끗한 피부로 해맑게 웃으면서 '그 날'을 이야기했다.


<화이트 CF - 김태희 편 (2000) >

https://youtu.be/rGRBcrdvbas


(출처: 유튜브)



그래, 뭘 말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다. 그날도 (성능 좋은 생리대 덕분에) 깨끗하고 밝고 가볍다는 거겠지(생리대 이름도 무려 '화이트'였으니). 그러나 생리하는 날의 색깔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피빨강, 때로 적갈색이거나 심지어 거무죽죽튀튀무스름한 흑갈색이 아니었던가. 얼굴에는 뾰루지가 주체할 수 없이 돋고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와 아무리 웃어보려 해도 어디 아프냐는 소리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날. 양이 제일 많은 날은 강의를 듣는 한두 시간 사이에도 혹시 피가 샐까봐 수업시간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배는 아프고 몸은 무겁고 기분은 엉망이고 짜증이 솟구쳐서 도저히 저렇게 해사하게 웃을 수가 없었던 나는 그녀들의 미소에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그 선배는 이내 데뷔해서 대한민국 미모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 잡았고, 생리대 광고의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그보다 십년은 훌쩍 지나서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몇 해 전 같은 브랜드에서는 검붉은색으로 가득한 이미지에 ‘대환장생리파티’라는 문구를 사용한 생리대 광고를 내보냈다. 다른 생리대 브랜드들도 조금씩 다른 접근을 시작했다. 하얀 색, 밝은 미소, 파란색 피로 채워졌던 이전의 광고에서 이제 겨우 현실을 향해 한발 정도 내디디는 모양새다. 생리대 광고의 오랜 관습적인 묘사를 깬 시도들에 대해 기사도 여러 개 찾아볼 수 있다.


<헬스경향 2020.05.28 장인선기자 - '“생리는 원래 빨갛다”...오랜 공식 깬 생리대 광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5281109002


(출처 : 헬스경향 2020.05.28 장인선기자 - '“생리는 원래 빨갛다”...오랜 공식 깬 생리대 광고') 유한킴벌리 화이트의 2012년(위)과 2019년(아래) 광고 비교




생리예정일이 모든 이들에게 공포의 디데이는 아니었지도 모른다. 거짓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생리가 별 거 아니었을 것이다. 양질의 생리대만 있다면 정말 흰 스키니진을 입고 롤러코스터를 타건 두번 재주넘은 다음 앞구르기를 하건말건 전혀 상관없는 날이었을 수도 있다(친구여, 그 삶이 얼마나 복받은 것인지 당신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생리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녹진녹진한 피로감이 엄습했다. 아침마다 침대에 껌처럼 달라붙어 퍼져버린 내 몸을 조각조각 수습해야 했다. 생리통은 아랫배의 불쾌감이 전부인 날도 있었지만 때로는 허리부터 다리 전체를 떼내어버리고 싶어지는 극한의 방사통으로 찾아왔다. 삼십대 초에는 결혼해서 처음 맞는 명절 연휴 첫날에 시댁에 갔다가 마침 찾아온 극심한 생리통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나중에 ‘큰 애가 시댁에 오는 게 부담되서 그러나’ 하시는 시어머니의 근심을 전해 들으며 내가 생각해도 너무 그럴싸한 꾀병 같아서 '살아서 이 오해를 풀 길이 있을까'란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다.


생리통 때문에 있었던 에피소드라면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을 나는 아주 많이 알고 있다. 혹부리 영감의 혹에서 노래가 나오듯이, 우리의 자궁이야말로 생리통으로 겪은 고통스러운 일화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이야기 주머니였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지만 몸에서 아프고 병든 곳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곳도 없다. 그토록 심했던 생리통이 언제 그랬나 싶게 사라지고 난 후에야 나의 자궁도 시끄러운 수다를 멈추고 그냥 조용히 제 할 일 하는 하나의 기관으로 돌아갔다.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