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가능할까?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by 달토끼

'인공지능'

이세돌과 알파고의 승부 이후 이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적으나, 이것이 진짜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져오고,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참 난해하다. 그래서 다양한 기사를 통해 최대한 쉽게, 다양한 각도로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인문학,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기사들은 주로 독일 웹사이트에서 발췌하여 직접 번역하였다.


원문출처: 디 차이트 온라인
글쓴이: 안야 큄멜
번역: Claire PEK
발행일: 2017년 6월 18일


어느 가사로봇의 독백

로봇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가능할까? 문화철학적 소설 <사람들의 꿈 속, 그 빛처럼 낯선(Fremd wie das Licht in den Träumen der Menschen)>에서 저자 요헨 베이제(Jochen Beyse)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인간과 기계 간의 대립관계, 그 이상이다.


기계가 인간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인간과 얼마나 유사해야 할까? 인간이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허용되는 걸까? 그 알기 힘든 모호한 경계선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는 것은 비단 인공지능 연구원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양한 드라마(리얼 휴먼 등), 영화(엑스 마키나 등)에서도 점차 빠른 속도로 희미해져 가는 그 경계에 대해 다루어 왔다. 그럼에도, 오로지 로봇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소설 한 권을 써내려가는 것은 새로운 동시에 꽤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아직 자각을 가지고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지 않은가.

<로렌스와 우리(Lawrence und wir)>, <레벨리온(Rebellion)>과 같은 저서를 통해 눈 앞에 다가올 섬뜩한 미래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 독일 작가 요헨 베이즈는, 이번 소설을 통해 답을 내기 힘든 과제에 도전하고 그 결과물에 시적 감수성이 담긴 제목(‘사람들의 꿈 속, 그 빛처럼 낯선‘)을 달아주었다. 보이지 않는 ‘나‘를 설정하고 기이한 독백을 이어가는 형식에 대한 사랑은 그의 최신 소설에서도 이어진다. 200 쪽에 걸쳐 이어지는 가사로봇의 독백은 가히 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에 견줄 만 하다.

의식을 갖고자 하는 베이제의 안드로이드 로봇은 2 쪽에서부터 “나는 감정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나‘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발화모드 변경‘ 명령에 따라 ‘롭‘으로 재차 변경된다. 그 과정에서 기계 내부의 저장되어 있던 영상기록물, 서적, 혹은 롭의 전생에 대한조각들이 두 가지 발화방식 사이에서 서서히 이동하게 된다. 초반에는 주인공이 어떤 현실의 차원에 존재하는지가 명확하지만, 로봇이 점점 더 인간처럼 사고함에 따라 독자 또한 현실과 판타지 간의 그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더욱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경고음을 울리는 식탁

롭은 평범한 네 식구가 살던 아파트에서 위기를 겪고, 이후 그 곳에서 겨우 빠져나와 폐기물 더미에 자리를 잡게 된다. ‘심각한 고장‘으로 자신의 직무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그럼에도, 롭은 단순한 고철덩어리 이상의 존재다. 그는 스스로를 ‘나‘라고 지칭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억할 줄 안다. 그 때문에 고장으로 깜빡이는 스크린만 쳐다보아도 예전에 살던 아파트 한 켠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새어 나오던 스크린병풍이 떠오르고, 그와 함께 악마와도 같던 식구들이 떠오른다 – 롭이 ‘아버지‘라고 불러야 했던, 성질머리 급한 족장 같던 가장, 그리고 인터넷에 빠져있는 시간 외에는 자신에게 쓸모 없는 가사노동을 시키며 자신을 괴롭힐 줄 밖에 모르던 그의 미성년 자녀들.

이 악마들의 집은 사물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냉장고가 말을 하고, 무언가 식탁 모서리에서 떨어지려는 순간엔 식탁이 경고음이 울렸다. 스마트 부엌에서는 명령체인이 알아서 작동되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의 롭은 때에 따라 쫓겨나기도 하고, 구석에 박혀 있기도 했던 천덕꾸러기일뿐이었다. 그 긴 지루함과 권태 끝에 롭의 퓨즈가 나가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밤이 찾아온 폐기물 더미 사이에서, 롭의 생존프로그램은 최우선과제로 전력공급과 인터페이스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롭은 흡사 피로가 누적된 인간처럼 울적한 향수에 젖어 매트리스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는 삶에 지친 것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느낌, 평범한 자동장치답지 않은 그 무언가를 느낀다는 사실에 롭 자신조차도 당황스럽다. 롭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잠재의식에 대해, “특정 회로층은너무 깊은 곳에 놓여 있어서 영원히 접근 불가하다“, 라는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라캉의 거울단계‘를 경험했던 그 순간 – '아버지'의 악마같은 자식들이 새로 산 3D 프린터로 롭을 닮은 홀로그램을 제작하여 그의 앞에 세우는 바람에 질겁했던 순간, 그리하여 나를 닮은 그 대상과 ‘나‘의 경계를 인식하게 되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극에 다다른 무경계성의 강요

텍스트의 흐름을 지탱하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의 프로세스이다. 그 중 하나는 해가 뜨는 순간까지의 카운트다운이고, 또 하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롭의 에너지량이다. 이는 희곡의 장치와도 같은 기발한 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동시에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이야기의 흐름(주인공이 병적인 독백을 읊조리며 비극적인 영웅의 죽음에 점점 가까이 가거나, 신을 상징하는 빛에 의해 구원을 받는 이야기)이 낯설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이 외에도 작가는 또 하나의 메타적 차원의 것을 끌어들이는데,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베이제는 <안전실의 확장>이라는 책의 저자로 등장하는데, 이 책은 매일 밤 롭이 읽게 되는 책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온갖 이상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개인의 의식과 시대정신을 동기화‘ 하는 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을 표방하는 작가처럼 등장한다. 안전실은 실제로 점점 더 확장되어, 실제 세계를 포괄하기에 이른다. 작가의 또 다른 자아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는 편집증이나 정신분열증을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혹은 베이제는 단순히 신자유주의적인 무경계성의 강요를 극단적으로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레니 트리스타노, 찰리 파커와 같은 재즈 거장들의 모습이 롭의 의식에 스치듯 등장하거나, 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영화 <미치광이들의 행성> 속한 장면에서 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가 주인공을 덮치는 장면이 재생되는 등, 대중문화 역사의 파편들이 롭의 의식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허구적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서도 롭은 꽤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갈리폴리 전투 속 오스만 제국의 5부대를 다루는 영화인데, 한 택시운전기사와 시간을거스르는 손님이 어쩐지 으스스하고 미래세계 같은 곳을 활주하는 내용이다.

롭 스스로가, 이전에는 분명히 구분되었던 것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점차 기록된 것과 기억된 것이 점차 하나로 합쳐지게된다. 혹자는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어째서 롭은 자신의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물리적 한계에 굴복하였는가? 혹은 그 순간 독립적인 문학 프로그램이 작동했던 것일까? 어떤 것을 의도했는지, 작가는 그 해석을 열어두고 있다.

롭의 유일한 롤모델

“아버지, 저는 스스로 생산해낸 지식을 갖고 싶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라고 롭은 절망적으로 외친다. 하지만 롭의 주변에서는 좀처럼 자발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전능한 선생님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롭의 악마 같은 ‘아버지‘조차도, 인터넷에서 발견한 말들을그대로 되풀이할 뿐이다. 대부분의 인공지능 이야기에서 기계는 인간의 삶을 꿈꾸는데, 베이제의 소설 속의 인간은 어딘가 원격조종 당하고 무감각한 모습, 즉 그다지 추구할 만한 인간상이 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롭은 그가 경험한 주변 인물들을 간결하게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들이 자유롭다고 여기는 행동들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그들의 자아성찰은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현실도피를 돕는, 철학 하는 택시운전기사에게는 열광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는 기계의 상상력, 매력, 유머를 갖춘 사람이다.

베이제는 서정적으로, 문화철학적으로, 심리분석적으로, 또 밀도 있게 롭이라는 기계가 주체로 성장해나가는 밤을 그린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가 기계와 인간 간의 대립구도를 넘어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원문 URL
http://www.zeit.de/kultur/literatur/2017-06/kuenstliche-intelligenz-jochen-beyse-fremd-wie-das-licht-in-den-traeumen-der-menschen-roman/komplettans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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