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젖과 우유

우리는 엄마라는 첫 말을 내뱉으며

by 김민율

엄마의 젖과 우유




나에게는 유당 분해 효소 결핍증이 있다. 그럼에도 마트에 갔다가 유제품 코너에서 우유가 눈에 띄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조금씩 데워서 먹거나 미숫가루에 타서 먹으면 오늘은 괜찮을 거야, 하면서 우유 먹기를 그만 두지 못하고, 기어코 구매하고 만다. 찬 우유만 먹으면 한 두 시간 후에 배가 아프기 시작하고 장이 꿈틀거리며 복부가 팽만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화장실로 직행해 설사를 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면 기운이 빠졌다. 다음엔 절대 먹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몇 날 며칠이 지나고 한 두 달이 지날 때까지 마트에 가면 우유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잊을만 하면 다시 우유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유 소화 능력이 없는 내가 우유를 마시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따뜻하게 데워서 조금씩 나눠 마시든가 우유에 미숫가루 양을 늘려 걸쭉하게 타 마시거나 우유는 조금 마시고 빵을 더 많이 먹는 것이었다. 몇 번은 우유 먹기에 성공해 탈이 나지 않았으나 다른 식품의 양보다 더 많은 우유를 마셨을 때는 어김없이 배탈이 나고 설사를 해야 했다.

우리는 모두 이유기가 지나서도 젖을 먹고 자라는 젖먹이 포유동물이었다. 목축을 하는 마시이족은 유당 불내증이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우유를 소화하는 능력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인간은 자라면서 아기였을 적에 가지고 태어난 락타아제를 유전자가 개입해 생산을 중단시켜 더는 우유를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낙농 문화가 발달한 마사이족처럼 내성이 생긴다면 우유를 먹는 일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우유를 떠올리면 엄마의 젖이 생각나곤 한다. 어느 늦은 저녁 욕실에서 목욕을 하는 엄마가 때 좀 밀어달라고 하여 욕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엄마는 벌거벗은 채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연두색 수세미를 들고 엄마의 등을 밀다가 출렁거리는 젖가슴을 보게 되었다. 우리 5남매에게 물린 젖은 이제 말라붙어 홀쭉해지고 주름이 져 있었다.

나는 7살 때를 기억했다. 남동생이 태어나 안방에 눕혀져 있고, 엄마가 밥공기에 젖을 짜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어린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엄마의 젖을 담은 밥공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았다. 혀끝에 달콤함이 묻어났다.

우리 5남매는 엄마의 젖을 빨고 성장했다. 양분이 풍부한 엄마의 젖은 생명을 살리고 어린 존재를 구원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우리 5남매는 엄마의 젖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엄마라는 존재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나 각기 다른 형태의 얼굴과 육체와 영혼을 가지게 되었지만, 존재의 양분을 나눠 먹은 5남매가 태어나 처음 맛본 달콤한 젖이 세상의 첫 맛이었음을 기억했을 것이다.

엄마의 젖은 성모 마리아의 젖과는 다른 세계의 아름다움이다. 성화 속, 성모 마리아의 젖은 대개 그리스도의 피로써 생명과 구원을 상징하는 성유(聖乳)의 의미로 신앙적인 세계와 맞닿아 있다. 그림 속 그녀는 어린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그녀의 젖이 아름다움 너머의 성스러움에 닿아 있다면 엄마의 젖은 숭고함에 닿아 있다. 젖몸살을 앓으며 보름달만큼 부푼 젖가슴을 내어 주어 미숙한 육체와 정신을 키웠던, 이제는 빈 젖. 나의 근원지이며 언어의 고향! 나의 언어와 문법은 엄마의 젖을 먹고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소젖이나 말젖, 당나귀젖이나 양젖, 염소젖이 줄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의 피였다. 엄마가 그 피를 짜내 젖병에 담아 남동생에게 먹이는 것을 어린 나는 지켜보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엄마는 젖을 떼고 분유를 타서 먹였다. 젖병에는 젖이 담기지 않고 분유가 반쯤 차 있었는데, 가끔 나는 엄마 몰래 분유통을 열어 한 숟가락씩 떠서 따뜻한 물에 타 마시기도 했다. 젖과 분유의 맛은 달랐지만 어릴 적에 맛 본 매혹적이고 신비한 음료인 것은 분명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급식우유가 나왔다. 급식우유는 각자 신청해야 먹을 수 있었다. 우유급식 신청을 한 아이들은 급식 당번이 아침마다 급식 우유가 든 연두색 플라스틱 상자를 교실로 들고 와서 맨 뒷자리에 놓아두면 제 몫을 가져다 마셨다. 나도 몇 번은 가져다 마셨지만, 급식 우유 신청을 할 수 없었던 날에는 친구들이 마시는 우유가 마시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 어린이였을 때만 해도 우유를 마시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우유를 먹으면 화장실을 들락날락 해야 했던 게.

우유는 몸에 좋은 영양성분이 많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설사를 유발하는 최악의 음식이기도 하다. 엄마의 젖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젖을 짜내어 자신의 몸을 경작하던 엄마는 어린 것들을 기르느라 젖유정을 앓았다고 한다. 그런 엄마의 보살핌으로 우리는 건강하게 자라나 건강한 어른이 되었다.

모유는 아름다운 언어의 젖줄이다. 누구나 아기였을 적이 있었고,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엄마의 젖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젖줄이 끊겼다면, 우리는 엄마라는 첫 말을 내뱉으며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언어적 존재로 성장해 자기만의 서사를 써내려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모유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고귀한 양식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이며, 그것은 시이고, 사랑이고, 우주이며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살다가 가끔 엄마라고 불러 보는 이유가, 젖냄새가 풍기던 어린 시절의 방안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어떤 근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지 않았을까. 유당 불내증으로 배탈이 나면서까지, 기어코 우유를 또 마시고야 마는 것도 어떤 젖맛에 대한 상실감을 채우기 위함인지. 나는 또 아침에 우유를 한 컵 따르고 있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