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영원불멸의 향기

한 때 좋은 향기로 존재하려던 욕망의 덧없음을,

by 김민율

불가능한 영원불멸의 향기


지하철 역사 안을 막 빠져나와 출구로 나가려 할 때였다. 달콤한 향수 냄새가 났다. 장미향 같기도 하고 라벤더나 재스민 향 같기도 하고, 아쿠아틱 향이나 페퍼민트 향 같기도 한 것이, 다양한 향들이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근처에서 작은 향수 가게를 발견했다. 누군가는 향수를 사가고 누군가는 향수를 팔고 있었다. 적당히 먼 거리에 있을 때는 농도가 옅은 향이 은은하게 전해져 와 기분이 좋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향수를 구경하고 가려 하자 갖가지 섞인 향의 농도가 짙어져 발걸음을 돌렸다.

오래전 캔들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둥근 유리병에 담은 연보랏빛 양초였는데 라벤더 향이 났다. 코에 가까이 대자 라벤더 향이 스며들었다. 좋은 향이었지만, 향이 짙어질수록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좋은 향이더라도 오래 맡으면 맡을수록 불편해졌지만, 영혼에 스며든 매혹적인 라벤더 향을 잊을 수는 없었다.

머리를 감을 때도 예전에 쓰던 제품을 바꾸어 프로방스 라벤더 트리트먼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헹구고 말리고 난 후에도 기분 좋은 옅은 라벤더 향이 남아 있었는데, 내 존재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향은 최대한 옅은 향이어야 했다. 허용 범위를 넘어서면 향은 지독한 꿈같아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조금 더 취하면 금세 정신을 잃고 죽음에 빠져들 것만 같은 어떤 아득함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런 비현실적인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향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범위의 향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어야 아름다운 향이 되는 것이다.

존재의 감각을 깨우는 향기가 있다. 농도가 옅은 한없이 가벼운 향이 있고, 농도가 짙은 한없이 무거운 향이 있다. 향의 무게는 어떤 존재와 삶의 무게를 감각하게 한다. 때때로 어떤 향에 취하면 그 사람이 교양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현명한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 덕이 있는 사람인지 난폭한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게도 되고, 어떤 향은 우리를 좀 더 높은 고상한 존재로 상승시켜 준다.

내 삶은 몇 가지 향에 길들여져 있다. 누군가와 카페에서 만나면 으레 껏 나는 캐모마일 차를 마셨다. 예쁜 도자기 잔에 캐모마일 꽃잎이 띄워져 입가에 대면 짙은 향이 코끝으로 전해졌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누군가는 왜 꽃을 먹느냐고 장난스레 웃었지만, 꽃 향기에 스미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한 잔을 다 마실 즈음이면 캐모마일 향기로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합성 화학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꽃향기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매혹적이고 옳다. 모든 향수는 복잡한 화학 화합물들을 조합하여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 내는데, 어떤 향수를 뿌린 사람이 지나갈 때, 그 산뜻한 향기에 매혹되어 뒤돌아 서서 그 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볼 때도 있지만, 알코올 냄새가 짙은 지독한 향수를 뿌린 사람이 지나가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그 향기에서 멀어지고만 싶어졌다. 어떤 제조된 향기가 아닌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들의 향기에 매혹되고 계속 스며들고 싶은 이유가, 존재는 자연의 본질에 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서 받은 축하 꽃다발을 풀어 빨간 장미에 곰팡이가 피거나 썩지 않게 잘 마를 수 있도록 재배열하여 다시 묶은 후 거실 벽에 걸어 두었다. 몇 날 며칠이 지나자 물기가 말라 꽃잎은 쪼그라들었고, 만지면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한 달이 지나자 마침내 달콤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향이 짙어져 혼을 빼놓을 듯했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온통 장미향뿐이라서 금세 나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장미향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향기의 천국에 입장한 것만 같았다.

장미는 살아있을 때보다 말라죽었을 때 그 향기가 더 깊고 오묘했다. 나는 살아 있었다. 살아서 어떤 옅은 향기를 가진 존재였다. 모든 향기는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존재에 모인다. 살아있을 때와 죽어 있을 때 그 향기의 무게가 다른 것은 존재를 완성하는 죽음의 마지막 이야기에 스며들기 때문일 테다.

삶이란, 존재란 자신만의 순수한 감각으로 독창적인 향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살아있는 존재는 향을 만드는 조향사이다. 존재의 꽃을 따서 증류기를 켜두고 증류액을 뽑아 향수병에 담는다. 독특한 자기만의 향을 만드는 데는 영감과 예민한 후각이 필요하다. 특유의 영감이 없다면 모든 향은 똑같거나 비슷할 것이고, 어떤 고유한 삶도, 존재의 이름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의 삶의 감각을 잃지 않고 영감을 얻어야 한다. 삶이 곧 영감이고, 영감이 곧 삶인 그런 향을 발명하는 것은 조향사의 운명이다.

존재는 아직 개화하지 못한 페퍼민트나 재스민일 수도 있고, 해발 고도가 높은 산지에서 자라나고 있는 라벤더일 수도 있다. 존재의 꽃들이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 때 어떤 사람은 꽃을 수확하고, 어떤 사람은 조향사에게 꽃을 판다. 얼마 후, 수증기 증류법을 통해 에센셜 오일을 추출한다. 줄기와 잎과 꽃과 같은 원료를 증류기에 넣고 수증기를 불어넣어 가열하는 것이다. 수증기와 함께 증발하는 영혼과 다시 응축되면서 액체 상태가 되면 향기로운 존재를 추출하여 작은 용기에 담아내는 것이다. 언젠가 존재의 마지막 때에 이르면 향기와 함께 사라지겠지만.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향기를 간직한 채 조금씩 증발해 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최대한 남은 시간의 향을 모으려고 애쓸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향기가 영원할 수 없듯이 차츰 지상에서의 삶과 존재의 영원성의 불가능을, 한 때 좋은 향기로 존재하려던 욕망의 덧없음을, 어느 날 문득 도착한 존재의 끝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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