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인생

무모하고 찬란한,

by 김민율

스무 살 인생




나의 스무 살은 어떤 사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미지의 시간 속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떻게 존재하며 살 것인지, 실존에 대한 물음 없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의 껍질에 싸여 있었다. 껍질을 벗겨내면 무언가 단단한 중심이 만져지는 것이 있을 줄 알았지만, 허공만이 만져졌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에는 희망이 없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개월 간 나는 꽃을 좋아해 꽃 도매상점에 취직해 컴퓨터 키보드를 눌러대며 주문 계산서를 끊는 일을 하고, 적은 월급을 받았다. 월급날이 되면, 용돈과 교통비를 제하고 저축을 하거나 엄마에게 생활비로 드렸다.

매일 버스를 타고 강릉 시내에 위치한 꽃 도매상점으로 출근하기를 반복했지만, 영혼의 구멍이 점점 커져가고 있음을 나는 알아챘다. 이 구멍이 무엇 때문에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매일 꽃 도매상점에 출근하는 삶이 즐겁지 않았고 기쁘지 않았다.

나는 꽃 도매상점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나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내게 무언가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전적으로 나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조금 두려웠지만, 고향 마을을 떠날 용기가 있었다.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은 간절함이 커져갈 때 즈음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 언니 있는데 가서 살래?”

“서울?”

“그래. 아무래도 여기 있으면 발전도 없고, 더 넓은 데로 가야 뭐라도 하지 않겠나.”

“나도 서울 가고 싶어.”

언니는 대학 졸업 후 월세방을 얻어 치과에서 일했다. 혼자 있기도 외롭고 무서우니 나보고 올라와 같이 지내자고 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꽃 도매상점을 그만두고 배낭을 메고 강남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무능했고,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어 매일 내가 집에서 한 일은 교차로나 벼룩시장 신문을 보는 일이었다. 동네 거리에 설치된 신문꽂이를 찾아 벼룩시장이나 교차로 신문을 가져온 뒤 방구석에 앉아 볼펜을 들고 일자리를 찾았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한 날이 많았는데,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엽서 그림 그리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게 되었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20분이면 가는 영등포 어느 허름한 상가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다. 젊은 여자 혼자 온갖 그림을 그려 걸어놓은 곳에 들어가자 그녀는 엽서 그림을 보여 주며 이 그림과 똑같이 색칠만 해오면 돼요, 했다. 할 수 있겠느냐고 하자 나는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받아온 엽서와 물감 붓을 바닥에 펼쳐 놓고, 나는 열심히 색칠을 했다. 언니가 치과에 출근한 사이 하루 종일 집구석에 틀어박혀 색칠만 했다. 작은 것 한 장 색칠하면 700원 큰 것 한 장 색칠하면 1000원을 벌었다. 한 달 남짓 몇 시간씩 색칠만 하고 앉아 있는 날 보더니, 어느 날 퇴근해 돌아온 언니가 말했다.

“그거 그렇게 해서 돈 벌겠니?”

“그럼 어떡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해야지.”

“너도 대학 가고 싶으면 가.”

“가도 돼?”

"그래. 내가 버니까 등록금 대줄게."


고등학교 졸업 전에도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 가서 문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문학이 생각날 때마다 가끔 나는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국어 선생님은 우리 마을 건너 마을에 살고 계셨는데 냇물을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에 집이 있었다.

어느 여름 방학 때 선생님께서 나를 집으로 초대하셨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2층 양옥집이었는데, 그 마을에서 가장 잘 살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선생님 이름은 박혜미였다. 이름도 얼굴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 교내, 교외에서 글짓기 상을 많이 받아 국어 선생님 눈에 띄었다. 선생님은 나를 집에 불러 놓고, 거실에 앉아 사과를 깎아 주시며 문예부 있는 학교에 가서 글을 계속 쓰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했지만 집안 형편이 안 좋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할 수 있는 학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지 않았다.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문예부가 있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어떤 선택은 내 자유와 의지를 넘어서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책임이 있었다. 그 무렵에 어떤 학교를 선택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문학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그런 진중한 물음을 가질 수도 없이 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무렵에, 아무 꿈도 꿀 수 없이 매일 꽃 도매상점에 출근하는, 아무 감동도 없는 형식적인 삶의 반복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마을 바깥의 삶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자유 의지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삶, 원하는 사람을 발명하고 싶었다. 훌륭한 사람이란, 삶이란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삶도, 인간도 없으므로. 스무 살 인생의 앞에는 가능한 삶만 있을 뿐이므로. 내게는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는 것만이 희망이고,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이었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가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실패가 더 많은 인생이 될지라도. 실패도 성장의 일부이므로. 성장은 미완성의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므로. 나는 더 나은 나, 더 좋은 나를 선택하는 일에 무책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반지하 생활을 하면서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고 혼자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교차로 신문에 실린 산문 원고 모집을 보고 아버지에 관한 짤막한 글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다. 원고가 채택되면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한다고 하여, 나는 그곳에 글을 써서 보냈다. 마침 연락이 왔고, 내 짤막한 산문이 어느 월요일 자 신문인가, 화요일 자 신문인가 한 귀퉁이에 실리게 되었다. 원고료 5만 원이 입금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되었던 것이다.

내 영혼은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게 무언가 끄적거리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라는 것 비슷한 것을 쓰며 스무 살을 보냈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가끔 우울했다. 어느 날 친구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내게 서울 예술 대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명동에 있는데 작가들도 많이 배출하고 유명하다고, 들어가기는 힘든 곳이지만 거기 한 번 시험을 쳐보라고 했다. 실기시험이 6개월 남짓 남아 있었다. 언니도 그 대학에 원서를 쓰고 실기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6개월 후 아무 준비도 없이 급히 실기시험을 치르고 예술 대학교에 합격했다. 반지하방에 날아든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었을 때 이제 내게도 다른 삶이 올 것만 같은 기쁨과 설렘이 가득했다.

스무 살 인생 동안 가장 잘한 선택은 예술 대학교에 입학해 문학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의 삶은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다른 삶을, 다른 인간을 만들어 갈 가능성이 있는 삶 쪽으로 뛰어넘어 온 것 같았다. 높이뛰기 선수처럼 더 높은 한계선을 넘어 어떤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숙한 스무 살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주인 없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선택과 나의 책임으로 만들어 가는 내가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삶이 곧 나인 그런 자웅동체의 삶이었다.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향의 원치 않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스무 살 무렵, 시를 선택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간절한 마음이 시켜서 한 선택이었다.

그 무렵에 내가 좋아한 것은 시뿐이었다. 오직 시뿐이어서 어떤 세상적 가치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는 나를 나답게, 더불어 창조적인 사람으로 살게 했으니까. 어떤 열정이, 어떤 고귀함이 나를 시에게로 이끌었고, 나는 시처럼 살기로 결정했으니까.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일찍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은 옳았다고 믿는다.

어떤 선택은 진부한 삶을 날마다 다른 삶으로 발명하는 도화선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어느 때를 만나면 삶의 어느 순간에 심지를 세우고 불을 붙여 진정한 자기만의 삶을 발명하는 일에 열정을 바치는 것이다. 가난을 각오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그것을 위해 어떤 것들은 포기할 가치가 있는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미래에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대도 그 무의미를 견딜만한 용기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것인가. 땀 흘리며 수고할 가치가 없는 것이 될지라도. 삶이 실패할지라도. 아무 소용없는 일에 불과한 것이 될지라도. 결국 자신의 무능함에 실망하게 될지라도. 보통 이상의 삶을 꿈꾸는 시간을 오랫동안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불안하고 미숙한 생 앞에 던져진 수많은 질문들을 보따리처럼 끌어안고, 스무 살은 그렇게 세상 속에서 잘 살아있으려고 애쓰는 무모하고 찬란한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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