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포인트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사랑총량의 법칙도 있다?

by 달빛마차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사랑총량의 법칙'도 있다!


나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려면 늘 언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부모님은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외가와 친가 모두 이른바 엘리트 집안이었고, 그런 집안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했다. 그 둘의 첫 번째 결실인 언니는 그 기대의 정점에 놓인 아이였다. 공부, 그림, 운동, 악기까지. 무엇을 시켜도 평균 이상이었고, 무엇이든 욕심을 내면 결국 해냈다. 부모님의 장점만 골라 물려받아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늘 어딘가 부족한 아이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욕심도 크지 않았다.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들으면 ‘왜?’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결과는 늘 부모님의 기준에 못 미쳤고, 그 결과들이 쌓여 내 학창 시절의 축적물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사춘기는 지랄총량의 법칙을 충실히 따른 시기였다. 참을 만큼 참았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나는 이유 없이 예민하고 까칠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번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성장 과정에서 들은 말은 늘 비슷했다.

“너는 머리가 좋아. 조금만 노력하면 돼.” 그리고 그다음엔 늘 조건이 붙었다.

“이번에 몇 등까지 올리면 네가 원하는 거 사줄게.”

나는 정말 내가 머리가 좋은 줄 알았다. 그래서 정말 ‘조금만’ 노력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공부했다. 외적 동기에 길들여진 아이는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나는 노력과 욕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내가 알지 못했던 방식의 사랑을 처음 마주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나를 구분 짓지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시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런 방식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심했다. 조건 없는 지지는 낯설었고,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몇 년을 함께 지내며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진심의 힘을 믿기로 했다.

결혼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양가 모두 나를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떨어지자 친정에서는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해 이제 그만하라고 설득해 달라고도 했다. 아마도 사위와 시댁의 눈치를 보며 느끼는 현실적인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믿어주고, 나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아빠의 병간호로 서울을 오가던 시기는 임용 시험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시댁에서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내려와서 시댁에서 지내며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첫째와 함께 ‘시댁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아이의 유치원을 옮기고, 나는 고3 수험생처럼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밥 걱정, 아이 걱정, 생활의 잔가지들은 모두 어른들의 몫이 되었다.

그 한 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조건도, 대가도 없는 신뢰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에도 총량이 있다면, 나는 어릴 적 그 몫을 충분히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신 늦은 시기에, 다른 형태로 건네받은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처럼 조건 없는 믿음은 사람을 바꾼다. 나는 그렇게, 사랑의 총량이 이동하는 순간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남편과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이 남자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사랑총량의 법칙을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티핑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