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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6kg, 체중계가 말해주지 않은 이야기

by 달빛마차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 참을성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맹자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오래된 글에 불과했다. 지금에서야 나는 안다. 어떤 문장은 살아본 사람에게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내가 합격하던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고, 동시에 가장 짧았던 계절이었다. 남편의 협력업체 문자 문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빠는 암 판정을 받았다. 평생 병원 문턱을 거의 넘지 않던 사람이었다. 매일 운동을 했고, 먹는 것을 가리지 않았으며,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입안에 구내염이 생겼다고 했을 때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작은 상처는 이상하게도 오래 남아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그 말 한마디로 병원을 찾았고, 더 큰 병원으로, 또 대학병원으로 옮겨 다녔다. 그리고 너무 갑작스럽고 잔인한 결과를 들었다. 구강암. 2기에서 3기 사이. 가능한 한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말. 아빠는 말했다.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다.”


그 말속에는 병의 공포보다도, 무너지는 일상을 붙잡지 못한 사람의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급히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수술 날짜를 잡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난 뒤의 대기는 고문에 가까웠다. 매일같이 병원에 전화를 걸어 혹시라도 앞당길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9월 중 수술 일정이 잡혔다. 그 시기, 우리 가족은 모두 제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엄마는 운동하다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는데, 척추 몇 번째 뼈가 금이 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누워있어야만 했고, 언니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장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결국 서울에 사는 고모와 큰아빠, 큰엄마가 먼저 병간호를 맡아주셨고, 나는 토요일 오전마다 서울로 올라가 그들과 교대했다. 토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는 내가 아빠 곁을 지키고, 다시 집으로 내려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수술 당일은 유난히 길었다. 7시간의 대수술. 끝났다는 말을 들었지만, 의식을 찾기까지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단 채 누워 있는 아빠는 꼭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그때의 나는 딸이면서 보호자였고, 동시에 누군가의 손이 되어야 했다. 산소포화도와 혈압을 일정 시간마다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간호사를 불렀다.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무너질 수 없었다. 다행히 아빠는 얼마 뒤 의식을 회복했고, 수술도 잘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제야 숨을 돌렸다. 일반 병실로 옮긴 뒤부터는 본격적인 병간호가 시작됐다.


그 무렵 나의 삶은 세 개의 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병원, 집, 독서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병원에서 간호를 했고, 틈이 나면 책을 폈다. 솔직히 집중은 잘 되지 않았다. ‘지금 공부할 때가 맞나’, ‘올해는 그냥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아빠의 병 앞에서 시험 준비는 너무 사소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끈을 놓지 마. 큰일을 겪었으니 분명 좋은 일도 따라올 거야.”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 해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남편은 아이에게로 가서 빈자리를 채웠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자리를 교대하며 버텼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협력이었다. 그해 가을은 그렇게 흘러갔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간호하고, 짧은 틈을 내어 독서실로 들어가 책을 펼쳤다. 흔들렸고, 자주 무너질 것 같았지만, 끝내 주저앉지는 않았다. 체중도 감소했다. 44kg였던 나는 한 달 동안 38kg까지 빠졌다. 그리고 그 계절의 끝에서 나는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 합격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낸 시간에 내려진 하나의 위로였다.


이제야 나는 안다. 그 모든 일들이 단지 불운의 연속은 아니었다는 것을. 하늘이 나에게, 조금 더 단단한 자리를 맡기기 전에, 내 마음과 몸을 먼저 흔들어 보았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앞으로도 흔들릴 수는 있겠지만, 끈을 놓지는 않겠다고. 그 삼각 동선 위에서 배운 버티는 법을, 내 삶의 다음 계절까지 가져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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