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에 사용했던 노트를 꺼냅니다.
연한 노란색 꽃잎이 흐드러지게 그려진 표지에
속절없이 이끌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노트는 깨끗합니다.
이전의 기록들은 다 뜯어지고 없습니다.
노트의 두께는 그만큼 줄어들어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분노와 원망과 미련과 오판과 낭비와 그리고 후회의 기록들.
한 장도 남김없이 모조리 뜯어내버리면
말끔히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내가 미워서 나는 그렇게 나를 지웠습니다.
못난 나 자신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문구점 선반에서 이 노트를 처음 발견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길 소망하며
홀쭉해진 노트를 서재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습니다.
20년이 흘러 노트를 다시 꺼냅니다.
뜯어내고 없는 기록들이 하나, 하나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수십 장에 이르는 페이지들을 한 손에 그러쥐고
절망에 사로잡혀 뜯어내려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잘 뜯어지지 않아서 더욱 분하고 서러웠던 기억이
희미한 통증으로 살아납니다.
아아, 지금 이 노트를 꺼내 들고 펜을 쥔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다시 이 노트를 찾은 것은
내가 바로 이 노트의 주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뭔가를 하고 또 하고 또 해내도
그 시절의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가슴 한편에 똬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습니다.
뭔가를 하고 또 하고 또 해냈을 때
나의 온몸을 감싸던 짧고 강한 빛에 가려
아주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빛이 사라지고 눈부심이 가시고 나면
어둠 속에 서서히 형체를 드러냅니다.
내 손 끝에 만져지는 축축하고 익숙한 그것.
공허와 불안,
불안과 공허.
사라지지 않는 그 무엇,
그 자체가 바로 나라면
나는 나를 버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뜯어내고 도려내고 기억 못 하는 척할 것이 아니라
이런 나를 가여워하고 견디어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금세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그 짧고 강한 빛을 끊임없이 좇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빛이야말로 내가 불안함을 견디어내는 대가가
아니겠습니까.
그 빛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한다면
그 불안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것으로, 나는 결론을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