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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Sep 16. 2022

바둑

다섯 살 여름에 동네 바둑학원을 찾았으니

올해로 6년째입니다.

그야말로 아이의 반평생을 함께하고 있는 셈입니다.


처음 학원을 찾았을 때 선생님께서는

한두 달은 돈 안 받을 테니 그냥 놀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한 주쯤 지나자 제대로 가르쳐보겠다고 하셨고,

한 달이 지나서는 저는 첫 달치까지 교육비를 냈습니다.


흑과 백을 제대로 쓸 줄이나 알았을까요.

선생님께서 경상도 분이셨던 까닭에

아이는 ‘흑’을 자꾸 ‘헉’이라고 발음하곤 했지요.   


그러나 아이는 정말로 바둑을 사랑했습니다.

입을 앙다문 채 동네 형들과 끊임없이 대국을 하고

선생님께서 주시는 대로 바둑 문제를 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했습니다.

은우야, 가자. 이제 가자.

아이는 들은 척도 안 했고,

뭐, 어머니, 그냥 애기랑 좀 더 놀다 오세요.

선생님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는 학원 아래 빵집으로 가서

‘애기’, 아이의 어린 여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몇 시간이고 책을 읽어주었지요.

어린 여동생은 그때의 빵 냄새와 책 냄새를 기억합니다.

학원 건물 옆에 흐르던 하천의 물오리들과 강아지풀,

민들레 꽃씨며 자갈밭의 개미들

이런 것들을 마음속 어딘가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워합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아이의 꿈은 바둑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바둑 책을 사주고

훌륭한 프로 아저씨들에 대해 알려주고

이런저런 바둑대회에 따라가서 응원하고..

아이가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와 바둑에 대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서

바둑을 배우려는 시도도 해보았습니다.

아이 선생님께 여쭸더니,

“성인들은 자꾸 싸워서 안 가르칩니다”

라고 단칼에 거절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독학에 도전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바둑의 세계가 더욱 아득하게만 느껴져서

결국 포기했지요.

어찌 되었든 나는 아이가 마음껏 바둑을 즐기길 바라면서도

아이가 바둑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작은 입으로 ‘수’ ‘사활’ ‘포석’ 이런 말들을 종알대는 게

그저 기특하다,

라고만 생각하고 웃어넘겼습니다.

...


이번 주 승단심사를 마치면 아이는 바둑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문제집으로 필기시험 파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꽤나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이답지 않게 끙끙대며 짜증도 내고 힘들어합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아이 아빠의 말에 나는 속이 상합니다.

“하기 싫어서 저러는 게 아니야.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물론, 바로 후회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이의 바둑 스승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 그분은 아니시고 이사 와서 만난 두 번째 스승이십니다.


선생님, 아이가 어려워합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바둑을 전혀 모르지만 그냥 느껴집니다.


정답이 하나뿐인 수학 문제와는 다릅니다.

바둑에는 많은 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을 수학화해야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느 것은 90%의 답, 어느 것은 80%, 어느 것은 70%, 어느 것은 60%...

수많은 답 가운데 100%에 가장 가까운 답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바둑이 어려운 것일 겁니다.

같은 단을 준비하고 기력이 같다고 해도

아이의 나이가 어린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열한 살과 열네 살은 생각의 폭이나 경험치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아이에게 충분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가야,

그저 최선을 다하자,

어떤 결과여도 말이지,

너는 언제나 진심으로 바둑을 사랑했고

네 안에는 바둑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바둑이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라는 것은 변치 않는단다.

큰일 일어나지 않아,

차분하게 마무리 하자.

이게 끝은 아니란다.


아가야,

너의 새로운 꿈,  

너의 선택을 응원할게.

이번에는 그냥 넘기지 않을게.  


언제나 내가 힘이 되어주어야 하겠습니다.

힘내서 오늘 하루를 열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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