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방법

by 주드

지난여름, 어느 원로 연극배우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광을 낸 묵직한 원목 테이블이 만약 말을 할 줄 안다면 아마 그분의 목소리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강연 내내 그분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들어

단 1초도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날 강연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 배우분께서 정신질환을 가진 배역을 맡게 되어 실제 정신병동을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병원장은 환자들을 직접 만나보기 전에 정신의학과 교수님께 대략적인 의학지식을 설명을 듣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분은 흔쾌히 교수님 연구실로 가서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그분을 극진히 대접하면서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정신의학 개론을 강의했다고 합니다. 어찌나 전문적이고 유익했던지 그분은 부지런히 필기도 해가며 열심히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이따금씩 조그만 소리로 습관처럼 혼잣말을 할 때가 있긴 했어도, 정말 열정적이고 성의 있게 정신의학 백년사를 훑어주셨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병원장이 연구실로 그분을 데리러 왔습니다. 그분은 “교수님 설명이 너무나 유익해서 환자들 만나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이제 환자들을 보러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병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만나셨잖아요.”

그분께서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고 했습니다.

그건 강연을 듣고 있던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은 병원장의 말을 가까스로 이해하고 나서야, ‘교수님’이 혼자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갔어야 했는데.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알고 보니, 그 환자는 실제로 과거에 교수님이셨는데 부인과 갑작스러운 사별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뇌질환을 얻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환자를 위한 최적의 치료는 발병 이전의 환경(ex-교수님이라는 명칭, 교수 연구실)을 제공하는 것이어서 이렇듯 아직도 ‘교수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씩 정신이 돌아와 사별한 부인을 떠올리는데 그때마다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때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라고 혼잣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원로배우께서는 그때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정신병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다.

다만 내재된 균형점, 기준점이 있는데,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질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 한 끗 차이의 비애를

그날 뼈아프게 느꼈고 잔인하게도 그 ‘교수님’ 덕분에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가,

작은 마찰에도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나

어떤 충동이나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로 인해

어리석은 판단을 내려버리는 모습들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딱 그 한 끗만큼 지켜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운동, 음악, 글쓰기, 그림...

불안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작은 방법들입니다.


오늘 나는 아침 일찍 낮은 산을 오르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이 시간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스케치북을 들고 도심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다행이겠지요.

나를 지키는 것들을

나는 알고 있어서요.


당신께서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안쓰러운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