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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Nov 10. 2022

개기월식

어제는 개기월식을 관찰했습니다.
아이가 운동하는 동안 옆에서
월식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관찰을 시작해
아이의 수업이 끝난 후
곧장 검단산 기슭 천문대로 자리를 옮겨
월식의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월식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예전에 일식은 두 차례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과자봉지와 상자로 관찰 기구를 만들어서,
또 한 번은 휴양지에서 수영하다 말고 옆에 서 있던 안전요원에게
선글라스를 빌려서요.
몇 년 전에는 토성과 목성이 4세기 만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기 위해
동네 뒷산에 올랐었지요.
빛 공해가 심해 비록 육안 관찰은 실패했지만요.
나침반을 이리저리 맞춰보며,
아들이 무척이나 애가 닳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월식은 처음이었습니다.
탁 트인 동쪽 하늘,
지구의 그림자가 크고 둥근달에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달을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지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지구의 그림자라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했습니다.

저것이 지구의 그림자구나!
정말, 지구는 둥글구나!

문득 과학적 경험과 사고는 무척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빼박, 얄짤없는 냉정함에 정이 안 갈 수도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그것은 한결같다는 뜻이거든요.
명왕성이 퇴출된 배경 역시 무자비함 이면에 일관된 진리 수호라는
위대한 목적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태양계의 행성들의 과학적 지위는 더더욱 공고해졌지요.
어쩌면 과학적 경험과 사고는 때로는 그 어떤 문학적, 예술적 성취보다
인간에게 더 큰 위로가 되고 안정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름 위를 걷다가 곤두박질칠 일은 없으니까요.
  
지구는 둥글다.
내 눈으로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면서
나는 묘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내가 마주한 모든 문제들 앞에서
이성적이고 냉철해질 수 있는 자질이 내게도 있을지 모릅니다.
오래전 위대한 과학자들이 내게 남긴 유산일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네,
붉은 빛의 산란을 받은 블러드문은
그저 타당하고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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