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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Nov 10. 2022

피아니스트

를 위한 책 읽기 시간에는 물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도,

집안일을 하다 말고 피곤해서 또는 햇볕이 너무 따스해서

잠깐 눈만 감아본 건데,

그대로 잠이 들고 맙니다.

눈꺼풀이 너무나 무거워서 도저히 들어 올릴 수가 없습니다.

잠에 스르륵 빠져드는 순간은... 얼마나 얼마나 달콤한지.

요즘 나는 그러합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밤 9시에 시작하는 쇼팽 연주회에 가는 내내 다짐했습니다.

조금만 졸자.


다행히도 연주가 너무나 좋아서 조금도 졸지 않았어요.

게다가 쇼팽의 잘 알려진 곡들이었어서 넓고 얕은 취향을 가진 나로서는 아주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등을 바라보는 자리여서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과 등근육의 움직임과 팔놀림, 춤추는 손가락을 지켜보면서

나는 끊임없이 ‘예술가의 격정’이란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강렬하고 갑작스러워 누르기 어려운 감정.’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거나 느껴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을 시작하자 조금 외로워졌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의 레퍼토리를 찾아들었습니다.

조성진의 연주,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연주, 요즘 핫한 임윤찬의 연주...

잘 듣는 귀가 있는 사람들처럼 눈감고 분간해내지는 못하지만

나도 그들의 연주가 각각 다르다는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쇼팽의 연주는 어땠을까.

자기가 작곡한 곡들을 쇼팽 자신은 대중 앞에서

어떻게 연주해 보였을까.

쇼팽이라면 후대의 연주가 중에서 누구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을까.


연주 레퍼토리 중 가장 좋았던 곡은

영화 <더 피아니스트>에서도 나온 쇼팽 발라드 1번이었습니다.

정확히 20년 전 영화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독일군 앞에서 연주를 합니다.

얼마나 격정적이고 애절했는지,

그 곡이 쇼팽이었음을

영화가 끝난 후에나 알았는데도

그 곡이 쇼팽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나를 비롯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느꼈을 테지요.


생일에도 기념일에도 선물 같은 걸 별로 바라지 않는데

올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네요.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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