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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Nov 22. 2022

등불

참 얄궂게도 말이야,

너희들이 곤히 잠든 밤이 되어서야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기억이 나는 거 있지


이불을 차 버리는지는 않는지

무서운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지

팔과 다리를 편안하게 뻗고 있는지

살피고 또 살피는데


낮에도 좀 이렇게,

잔소리 그만하고 빨리빨리 서두르는 거 잠시 멈추고

너희의 눈빛과 목소리와 손길을

살피고 또 살폈다면 얼마나 좋았어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밤이 되면

그제야 엄마는 보드랍고 따뜻한 너희들에게

가슴속에 울음 가득 괴어놓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날

너희의 오늘이 정말 멋진 것이면 좋겠어

딱 내 마음에 들게 살아보고 싶지만

오늘은 늘 우리의 마음에서 벗어나 있지

 

두툼하게 입었는데도 마음속까지 꽁꽁 얼어붙는 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날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겨서 엄마에게 미안해지는 날

그런 날들이 처음으로 찾아오면


괜찮다면 엄마가 함께해줄게

잔뜩 곱은 손 엄마 겨드랑이에 넣고 녹여줄게

콧물까지 흘리며 같이 하늘 바라봐줄게

말해주지 않아도 묻지 않을게


등불을 켜 둘게

눈길 닿는 곳에 그리움이 가리키는 곳에

어디에서나 빛이 보이도록

멀리까지 오래오래 비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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