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 May 05. 2022

봄밤 2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창밖으로 커다란 목련나무가 보였다.

이른 봄,

눈은 녹았지만

차마 떠나지 못하겠는 겨울의 입김이

이곳저곳 떠돌며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대는 때.

다른 꽃들이 연둣빛 잎사귀를 조심스레 먼저 내보이는 동안,

목련, 너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시커먼 가지 위에 커다란 꽃부터 부풀렸다.

가지마다 하얀 새가 내려앉은 듯,

도톰하고 부드러운 공단 드레스를 꺼내 입은 듯,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7일 남짓한 시간,

나는 너를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담고 또 담곤 했다.


기다리지 않는 너는 떠날 때도 기다리지 않았다.

후두둑 후두둑 무정하게 떨구는 너의 마지막 모습이 나는 마음 아팠다.

그 자리에 짙푸른 잎새들이 돋아났지만

나는 마음이 상해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 집을 떠나고

이곳에 오자마자 나는 집 안의 창문들을 살폈다.

여기에도 있을까.

없었다, 나의 목련은.

앙상한 나뭇가지 드러내놓은 나무가 하나 있긴 했다.

키가 컸지만 목련은 아니었다.

벚나무도 아니었다. 은행나무도, 전나무도 아니었다.

한겨울이었으므로 나는 네가 누군지 짐작도 못했다.

봄이 되어 너는 여느 나무들처럼 연둣빛 잎사귀부터 내어놓았다.

겁쟁이, 너는 목련은 못 되는구나.

나는 괜히 미워 한 마디 했다.


그런데도,

날마다 눈길이 갔다.

당연하지, 거실 창밖으로 내다보이니까.

그렇긴 한데,

연둣빛이 참 예뻤다.

이것 봐, 4월은 모든 게 예뻐.

물론 그렇지, 그런데,

저 나무 이름이 뭘까.


4월의 끝자락,

드디어 하얀 꽃잎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늘고 기다란 꽃잎이 덩어리져 피었다.

왠지 실망하고 말았다.


어느덧 5월.

어느 차분한 밤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진한 꽃향기가 풍겼다.

아카시아일까.

아니었다,

그 꽃이었다.

목련에는 없는 진한 향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너구나.

봄밤에는 꼭 너를 기억하게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봄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