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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Nov 23. 2023

고독의 시간

 인생에서 홀로 고요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에 한 시간이라고 치면 1/24이니 96살까지 장수한다고 해도 인생 통틀어 고작 4년에 불과하다. 살아가는 대부분의 동안 원해서든 또는 그렇지 않음에도 나의 시간과 공간에 타인이 개입한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뿐이므로 타인과 연루되는 그 시간들 또한 소중하다. 다만, 나 혼자 온전하게 자유로운 상태로 인생의 일부를 보내는 시간은 몹시 짧으며,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는 그 시간이 사실상 내 인생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때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간을 애써서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온전하게 자유로운 상태’란 선택의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정해진 일상을 쪼개서, 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을 나의 자유의지와 선택에 기반해 만든 시간이므로 이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다. 애초에 오롯이 내 것이어야만 성립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때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핸드폰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에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즐거움이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형태는 진정한 의미의 ‘홀로 고요한 상태’ 다시 말해 ‘고독’이 아니다.


 고독의 시간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보는 상태여야 한다.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귀 기울이고,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질문을 하고, 의문과 검증을 반복하고, 감정을 느끼고, 끝내 어떤 깨달음을 얻기까지 모든 과정은 내가 직접 계획하고(의식의 흐름에 따른 무계획의 계획이 되겠지만) 내린 일련의 무수한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선택들의 순간, 나는 자유롭지만 외롭다.


 그런 외로움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외로움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외로움으로 가득한 세상, 굳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으로 빠져들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지금껏 살아온 나날들에서 그 어느 순간 외롭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던 때이던 사람들 사이에 껴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때이던. 오히려 홀로 어느 심야영화관에 들어서며 붉은 카펫을 밟던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 밤 뜨거운 탕에서 반신욕을 하며 눈을 감고 있던 순간,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작은 노란 등을 켜고 노트를 펼치던 순간.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무엇도 없는데도 전혀 외롭지 않던 순간들이 더 많지 않았는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하고 싶은지, 해야겠는지, 어떤 면에서 저 사람과 생각이 같아서 기뻤는지 또는 반대여서 불편했는지, 왜 참지 못했는지, 참지 못해서 후회했던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기다려지는지, 아니 기다려지는 것이 있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고통을 주는 그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과연 할 수 있을 것인지, 자꾸만 손이 미끄러지지만 그럼에도 꼭 붙들어야 할, 온 힘을 다해 붙들어야 할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고독의 시간’에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또는 명상을 통해서 ‘고독의 질문들’을 한다.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이런 것들을 공유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외로움을 잊기 위한 것에만 목표를 둔다면 도리어 더 외로워진다. 내 생각을 반대한다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들은 내 고독을 끝까지 함께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들 자체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독히 외로울 때가 있다. 내가 공들인 사람이나 일이 기대에 어긋날 때나 상대가 도저히 내 생각을 납득하지 못할 때, 아니면 그냥 날씨나 컨디션 같은 이유로 외로움의 짙은 그늘이 눅눅한 이불처럼 나를 덮친다. 어떤 이유에서건 외로움을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더욱더 외로워질 뿐이다. 나 홀로 고독의 시간을, ‘외로움’의 시간을 자발적으로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밖에서 찾아지지 않는 해결책은 물론 안에서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허탕을 치지는 않는다. 내 안에는 나의 외로움을 아주 절절히 들어주고, 느끼고, 덜어내고자 애쓰는 ‘나’가 변함없이 자신과 눈 마주쳐주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간은 ‘고이불허孤而不虛’, 외롭지만 비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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