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물 안으로 들어간 바다는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트램 타고 10분 걸려 도착하는 브로드 비치. 갈 수 있는 바다는 많지만 아직 어디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니까 트램 한 번만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이곳은 부담이 없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조차도 내 눈엔 한적해 보이는데 브로드 비치는 말할 것도 없다. 전날보다 바람이 덜 부는 건지 아니면 여기가 파도가 약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영을 하기에는 서퍼스 파라다이스보다 나아 보였다.
날씨도 수온도 딱 완벽함 그 자체. 얼마만인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만에 인공이 아닌 자연 날것의 파도타기를 즐기며 들떠 있는데 옆에 계시던 호주인 아저씨께서 친절하게도 부기 보드 한번 타보라며 넘겨주셨다.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어서 시도만 해보려다가 재미가 들린 바람에 한 시간 내리 물밖에 나가지도 않고 바다와 물아일체가 되었다.
그렇게 수영을 마치고 나와서는 비치타월 위에 누워 헤드셋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단잠에 빠진다. 선선한 바람과 뜨겁지 않고 따스한 햇빛 덕분에 온몸에 맺혀있던 물기가 금세 마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돌아가는 트램을 타러 가는 길에 작은 초등학교를 지났다. 체육시간인지 보라색 교복을 입은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모두 단체로 운동장에 나와있다. 푸른 잔디로 덮인 드넓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농구를 하는 아이들, 둘셋씩 걸으며 자기들끼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아이들 등등 가지각색.
호주 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다만 수업과정 중에 야외활동이 많고 피부암에 대해 더 민감해서 모자도 유니폼의 일부인 걸까?
운동장 밖으로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형들도 보였다. 평일인 화요일 오후 4시쯤인데 엄마들보다 아빠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 일할 땐 아이들을 데리러 대부분 어머님들께서 오셨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 한편으로 겹쳐 보이는, 학교 다닐 때 자주 학교나 학원에 데리러 와주셨던 우리 아빠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