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티비를 거의 보지 않지만 드라마도 역시 일절 안 본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을 많이 보고 겪어서인지 작위적인 드라마보다는 현실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들이 나에겐 훨씬 더 인상 깊고 흥미롭기에.
믿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날 밤 브리즈번에서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을 겪었다. 내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주신 마음씨도 따뜻한 마스랑 헤어지고 다시 세븐일레븐을 지나가려는 찰나 그 앞 길바닥에 앉아계신 두 분과 휠체어에 앉아계신 한분과 눈이 마주쳤다. 거의 동시에 서로 “Hello, how are you?”라고 인사를 나눴는데 그 인사 한마디가 긴 대화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옆자리에 쌓인 짐들을 보아하니 이분들도 왠지 마스처럼 집 없는 부랑자들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사귈 때 그 사람의 인성과 됨됨이로는 평가하되 배경, 인종, 나이, 국가 등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과 순수한 마음을 본다. 그래서 이분들이 부랑자라 하여 두렵거나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화를 나눴을 때 꾸밈없는 순수함이 느껴지는 좋은 분들 같아서 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졌다.
휠체어에 앉은 맥스 앞에 다리를 반쯤 구부리고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니 너무 다리가 저려서 그냥 조쉬랑 제이미처럼 나도 바닥에 털썩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옷이야 빨면 되지 뭐. 브리즈번에는 한국인도 많은데 시내 중심이다 보니 거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앞을 지나가는 한국인도 많았다. 그들과 함께 있는 나를 보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못했는지 내 앞에서 대놓고 한국어로 수군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평범하고 소소한 주제들로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맥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 가장 불행한 일을 많이 겪은 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참담했다.
맥스의 가문은 꽤나 유서 깊은 남아공과 프랑스 가문이었는데 가족 사이에 내려온 오랜 전통 때문에 아들 중 한 명은 꼭 군인으로 일정 기간 이상 군 복무를 해야 한단다. 맥스에게는 쌍둥이 남동생, 남동생 한 명, 여동생 한 명이 있었는데 쌍둥이 동생은 어릴 때 살았던 남아공에서 내전 중에 사고로 일찍 죽었고 남동생은 알코올 중독 때문에 복역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본인이 복무를 마쳐야 했다고 했다. 칠 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남아공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전쟁 중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오른쪽 시력과 청력을 상실하고 뇌손상도 입게 되었다고 하셨다. 종아리와 옆구리에 총을 맞아 보여주신 자리에는 아직도 그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고 손가락과 팔 일부 뼈가 튀어나와 아직도 그 상처가 한눈에 보였다.
휠체어를 타는 이유는 5주 전쯤 3번째 뇌졸중 발작이 일어나 지금은 일시적으로 걸을 수가 없어서이고 그전에는 길을 걸어가다가 강도들이 뒤에서 파이프로 머리를 내려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두 번째 뇌졸중이 왔다고 하셨다.
남동생은 알코올 중독으로 심하게 고생하다 2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에 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결혼했던 여자는 맥스가 전쟁터에 있는 동안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바람이 나서 이혼하게 되고 그 뒤에 만났던 한 여자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지만 22살의 어린 나이에 3년 동안 만났던 남자 친구로부터 2년 전 살해를 당했다. 살인범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지만 아저씨는 그를 직접 죽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이 되고 딸에게 평생 죄책감이 든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자와 죽은 딸 사이에 올리버라는 3살짜리 아들이 있고 맥스가 돌볼 수 있는 처지가 안되어 여동생이 돌보고 있다고 했다. 딸이 죽고 나서 이 모든 비극을 감당하지 못한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로부터 6개월 뒤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매우 친밀하고 가까웠는데 그렇게나 사랑했던 가족들을 모두 잃고 난 후에 집에서 혼자 있는 게 너무 두려워서 일부러 이렇게 밖에 나와 길에서 지내거나 차라리 호텔에서 혼자 묵는다고 하셨다. 처음 봤을 때는 그도 역시 돈이 없어 길 위에서 지내는 부랑자 중 한명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충격적이었다. 아버지는 남아공에서 엄청난 재력과 세력의 집안 출신이고 어머니 역시 프랑스에서 어마어마한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재산이 많다고 했다. 이 부분은 과장이 아닐까도 싶었는데 그가 보여준 것들이 사실을 뒷받침해주었다. 외적인 장애가 심하고 허름한 차림새로 새벽녘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그가 실제로는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가 부랑자이든 부자이든 상관없이 내게 그는 그냥 맥스 그 자체였다.
벌써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갔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충격이 너무 컸어서 잠시 자리를 떠나 자전거를 타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그들 곁으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나를 그들은 굉장히 반겼다. 조쉬에게 맥스와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 둘 사진 좀 찍어달라 부탁하니 아예 바닥에 엎드리기까지 하면서 너무 열심히 찍어주는 바람에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쉬와 제이미는 둘이서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맥스랑 둘이 남아 맥스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말씀하시는 내내 눈에 고인 눈물과 목소리와 표정에서도 느껴지는 절망감과 상실감이 너무 깊고 슬퍼서 맥스도 울고 나도 같이 울었다. 처음에 같이 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다 같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살아오는 내내 그런 엄청난 불행들을 겪어오신 분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도와드리고 싶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밖에 없었다. 딸이 살아있었더라면 내 또래였을텐데. 나를 딸처럼 생각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니 그 말을 듣고 더 슬프게 우시는 아저씨를 꼬옥 안아드렸다.
마스가 그랬던 것처럼 맥스도 근처에 문을 연 카페로 나를 데려가 커피를 사주셔서 같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 6시가 되어 골드코스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는 길목까지 데려다주셔서 마지막으로 포옹하고 헤어졌다. 힘겹게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부디 아저씨의 앞날에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