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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Apr 15. 2020

꿈일까

탕갈루마 채용 소식

 16일 아침 9시에 골드코스트에 계신 돈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이틀 밤을 통틀어서 3시간밖에 못 잔 터라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까지 돌아오는 길 내내 환승할 때를 제외하곤 자느라 정신없었다.
 피곤함이 쌓여서 이날은 밤늦은 시간에 잠깐 바닷가에 다녀온 것 외에는 외출도 안 하고 푹 쉬었다.  휴양지 같은 분위기 탓도 있어서 왠지 모르게 몸이 더 늘어진다.
 
 다음날에도 푹 늦잠을 자다가 오늘은 좀 나가 봐야지 싶어 오후 12시가 넘어서야 느릿느릿 집을 나섰다. 바다로 향해 걸어가던 중 갑자기 모르는 번호전화가 왔다.
 “헬로?”하니 탕갈루마에서 내 면접을 보셨던 매니저님이셨다. 원래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 결과를 알려주신다고 하셨고, 그동안 메일로 소통했으니 결과도 메일로 통보받을 거라 생각했어서 갑작스러운 뜻밖의 전화가 놀랍고도 반가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내 목소리에서조차 떨림이 느껴졌다.
 면접 중에는 만약 채용되더라도 빨라야 3주쯤 후인 12월 12일부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혹시 좋은 결과가 있더라도 남은 3주 동안은 뭘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매니저님께서 전화로 내게 말씀하시길, 지금 당장 자리가 비는 게 아니지만 특별한 케이스로 나를 일찍 채용하기로 결정했는데 당장 다음 주 수요일에 탕갈루마로 오는 게 어떤지. 나에겐 이보다 완벽할 수가 없다. Special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꾸 기분 좋게 맴돌았다.

 믿기지 않는다. 호주에 가면 반드시 섬 안의 리조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국에서부터 약 5개월 동안 준비하고 상상해왔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미 잘 닦여진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결과가 나에게 너무나도 의미 있고 값지게 느껴졌다.
  채용 결과를 알게 되는 그 순간 직전까지도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때로 불안감이 엄습해오려고 할 때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는 차분히 좋은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주변에서 나보다 더 걱정스러워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믿었다. 그래도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이 이런 모든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마치고 난 후에도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가 흥분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호주에 온 지 이제 막 일주일도 안됐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도 않은 건데 앞으로는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곧바로 부모님과 할머니께 영상통화로 소식을 알려드렸다.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방방 뛰고 신났다. 엄마는 내가 어디에 있으나 나를 위해 매일 기도를 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없이 호주로 떠나겠다 하니 사실은 나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걱정스러우셨겠지만 내 앞에서는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시던 엄마.
 호주에 오기 직전에 약간의 갈등과 불화가 있기는 했지만 아빠 역시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을 한 번도 반대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신 적이 없었다. 공부에 대해 강요한 적 없었던 학창 시절에도, 만 19살에 처음 혼자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 했을 때도, 1년간 휴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스코틀랜드의 캠프힐에 가서 장애학생들을 도우며 살러 가겠다 했을 때도,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또다시 혼자서 유럽 방랑생활을 하겠다 했을 때도, 동기들처럼 임용고사에 합격해 교사가 되는 대신 집 근처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도. 항상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고 진심을 담아 말씀하시는 아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진짜 행복들을 다시 찾고 싶어서 호주로 왔다. 그런 의미에서 탕갈루마 채용은 분명히 좋은 출발점.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행복하게 웃으시던 부모님의 표정이 영영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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