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on Road

그때 그 생각 - 17

18/11/02

by 김민지

엊그제는 혼자 서울숲에 갔다. 먼저 자전거를 넉넉한 시간만큼 대여해서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천천히 바람을 가로질러 달렸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가을스러운 색채들로 온 숲이 어여쁘게 물들어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들 중 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 순간과 장면을 가슴에 담고 싶어 질 때마다 중간중간 멈추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숲 한 바퀴를 유유히 도는 동안 많은 것들을 보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듯한 백발의 할머니께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가을을 담고 계시던 모습, 외국인 게이 커플이 단풍이 예쁘게 든 나무 아래에서 서로 입맞춤을 하며 셀카를 찍던 모습, 행복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웨딩 스냅을 찍던 예비부부,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같이 군복을 입고 모여있던 군인들,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같이 모여서 깔깔 웃던 고등학생 무리들, 휴가 나온 군인이랑 여자 친구랑 같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열심히 커플사진 포즈를 연습하던 모습,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 뒤를 기쁘면서 조마조마한 듯 바라보며 쫓아다니던 애기 아빠, 혼자서 사색하며 느릿느릿 호숫가를 돌던 대학생, 강아지풀 사이에 몰래 숨어있던 강아지풀 같은 새털, 길고양이들과 재밌게 놀아주던 홍콩에서 오신 여성분, 3명의 사진가가 같이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애견 스냅사진을 찍는 모습.


나 홀로 나들이도 참 재밌다고 생각하던 중 가장 마지막으로 눈길을 끈 한 사람이 있었다. 길고양이들을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던, 교복을 입고 앳된 얼굴의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 나처럼 혼자 온듯하여 말을 걸었고 우리는 곧 서로 조금씩 말을 텄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마음도 금방 열린다. 유럽에 있을 때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걸면서 먹을걸 사주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가령 브뤼셀 길가를 걸어가던 중 케밥을 사준다던가 부다페스트 강가에 있다가 갑자기 마트에서 먹고 싶은걸 다 고르라 하고 사주고 떠난다던가 파리 센강 다리를 건너는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하던가 그런 일들 말이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나한테 무슨 대가를 바라는 건가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내게 선뜻 호의를 베풀어준 어느 누구도 나에게 바라거나 요구하는 게 전혀 없었다.

그때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친절한가 의아했는데 이 아이를 보니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아빠가 일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날 데리러 일부러 먼길 돌아서 와주시는 중이었지만 급하게 먼저 들어가시라 하고 이 아이에게 치킨이랑 닭발을 사주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들 둘에 막내였는데 부모님도 맞벌이하시고 집 가면 혼자 밥 먹기가 싫어서 저녁은 거의 굶는다고 하는 아이가 남기지도 않고 싹싹 다 먹었다.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더니 “잘했어. 네가 받은 것들을 그렇게 다시 베푸는 건 좋은 거야.”라고 하셨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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