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에 이메일 받자마자 바로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15일에 면접을 보러 브리즈번 근처에 있는 모튼 섬으로 가야 하므로 다음 주쯤에 브리즈번으로 도착하면 한국에서의 시간적 여유는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주가 아닌 다음 주로 비행기를 알아보니 값이 훨씬 비쌌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사안이 걸린 만큼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빠듯하게 도착하기도 불안했다.
가격과 시간적 여유를 고려하니 5일 후인 이번 주 토요일에 떠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듯해 보였다.
처음에는 브리즈번으로 알아봤지만 골드코스트로 가는 게 10만 원 정도 저렴했다. 물론 골드코스트에서 브리즈번 왕복 기차값들을 합치면 비슷비슷하다 할 수 있으나 왠지 골드코스트가 마음이 더 끌렸다. 어차피 브리즈번이나 골드코스트나 잘 모르고 둘 다 안 가보기는 마찬가지니 늘 그렇듯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국에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당연히 편도로, 가격은 수화물까지 추가해 45만 원 정도였다.
집에 혼자 있었는데 순식간에 비행기를 끊고 부모님께 전화드려 비행기 티켓 끊었다고 말씀드렸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카톡과 전화로 이제 정말 티켓 끊고 이번 주 내로 바로 떠난다고 알렸다.
처음에 워홀 가겠다고 선언한 게 5월인데 8월 말에 퇴사를 한 후에도 두 달 동안 백수로 놀고 지내면서 떠나지를 않고 있자 친구들은 다들 대체 호주로 언제 떠나냐, 이러다 내년에 떠나는 거 아니냐 웃으며 장난치듯 얘기했지만 그런 소리들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번 계속 듣다 보니 남몰래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뭐든지 적절한 때가 있다고 믿는다. 남들 말에 휘둘리지 않고 빠르든 느리든 내가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페이스대로 움직이고 실천할 것. 항상 그래 왔고 또 그게 나한텐 맞는 방법이 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묵묵히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비자를 받자마자 바로 떠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더라면 호주에 가서 불필요한 시간이랑 돈을 낭비하면서 타지에서 더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하는데 급급했을게 뻔했다.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간의 휴학을 결정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범대라는 특성상 다른 과들과 달리 군대라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휴학생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데 특히나 임용고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는 바쁘고 중요한 시기인 이때 1년 씩이나 휴학을 하고 심지어 외국을 나가 있겠다니 주변 동기들이나 친구들의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때도 나 자신을 믿고 떠났던 스코틀랜드에서의 캠프힐 생활과 유럽 배낭여행은 1년이라는 시간에 비할 수도 없는 큰 가치를 지니기에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너무나도 옳은 결정이었다.
호주로 떠나기 전 저녁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할머니와 전화로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셨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으니 성급해하지 말고 찬찬히 준비하거라."
사람들마다 제각각 자기에게 맞는 시기와 페이스가 있다. 무리하게 남들의 페이스에 맞춰서 따라가려다 보면 언젠가는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느린 걸음을 걷고 뒤쳐지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게 사실은 나에게 맞는 페이스라는 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의 생각이나 시선이 불안함의 요소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메일을 받자마자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처럼 남들이 놀랄 정도로 걸음이 빨라질 때도 있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나에게 맞는 페이스대로 살자. 내 인생이니까 내 걸음의 속도는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