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프르에 도착하고 나서 난생 처음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오후 3시 반에 도착해서 다시 오후 11시 55분 비행기로 환승하기 전까지 남은 8시간 동안 뭘 할까.
공항 기차를 타고 시내에 다녀올까. 아니,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려서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냥 공항 안에서나 있어야지.
공항이라는 장소를 좋아한다. 온갖 다양한 감정들로 가득 찬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그곳.
친구를 배웅해주러 갔다가 인천 공항에서 반나절 동안 가만히 공항 안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21살 때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쳤을 때 다음날까지 하루라는 시간이 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공항에서만 오롯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을 정도로 내게는 흥미로운 공항.
쿠알라룸프르 공항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공항 자체에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내 눈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전통복을 입은 공연단의 춤을 구경하고, 공항 밖으로 나가 잠시 택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미세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푸른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이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공항 내에 있는 슈퍼에 들려 무엇이 있나 슬쩍 들여다보고,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 런닝맨을 좋아한다며 말을 건넨 공항 직원과 얘기하고, 중국인 관광객이 게이트 들어가는 입구에서 새치기를 하다가 보안요원에게 쫓겨나 뒤로 밀려나는 걸 지켜보고, 공항 컴퓨터로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있나 찾아보고, 내 소식이 궁금한 가족들 친구들과 연락해 안부도 전하고, 큰 유리창 너머로 해가 지는 걸 감상하고, 출출해졌을 때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고른 미고랭을 먹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은 후딱 잘만 간다.
아빠께도 영상통화를 걸었더니 통화하는 내내 나를 보기만 해도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덩달아 나도 웃음이 실실 나온다. 오랜만에 아빠랑 나랑 서로 웃는 모습 보니 기분이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