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를 하나도 모르는 데다 짐까지 있는데 감사하게도 내 호스트인 돈 할아버지께서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직접 데리러 와주신 덕분에 일단 도착하자마자 걱정할 일이 없어서 좋다.
이상하게도 늘 내가 꼭 필요할 때마다 그에 맞는 행운이 따라주는 일이 잦은데 그 덕분에 여기 호주에서도 첫 단추부터 뭔가 잘 끼워진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초면이지만 반갑게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가려는 찰나 갑자기 스피커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고 그 순간 공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발걸음이나 하던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묵념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 혼자 당황한 모습이었으나 뒤늦게 알고 보니 호주의 현충일 같은 Remeberance Day가 내가 호주에 도착한 11월 11일 같은 날.
그리고 매년 이날 11시가 되면 세계 1차 대전이 종식된 것을 기념하여 호주 각지에서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렇게 묵념을 한다는데 때마침 내가 게이트 밖으로 나올 때와 타이밍이 우연히 맞았다.
호주 도착하자마자 너무 호주라는 게 실감 나는 특별한 경험인걸.
공항에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려야 할아버지 집이 있는 골드코스트의 중심지인 서퍼스 파라다이스 도착.
공항에서부터 그냥 한 도로로 쭈욱 따라가면 돼서 매우 단순하다.
하늘에서 바라본 골드코스트 해안선은 굽이굽이 엄청 복잡했는데 육지는 정반대로 엄청 심플.
차창 밖으로 손을 살짝 내밀어 부드러운 바람을 느낀다.
차 안에서 내리기도 전부터 이미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만 바라봐도 좋다.
오자마자 그간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은 이미 싹 사라지고 없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호주라는 나라와 제대로 친해지기도 전부터 벌써 여기가 좋아져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