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의 수영 일기: 허리를 뒤로 접어서 접영

접영 시작

by 잼써

접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잘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접영의 기본이 되는 웨이브를 꾸준히 연습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어렸을 적, 댄스 전문 학원에서 방송 댄스를 배웠다. 이때 나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들과는 유독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초보이기 때문에 나오는 어설픔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연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동작들만 해댔지만 꾸준히 2년 정도를 배웠다. 수업 전에는 워밍업으로 기본기를 위한 동작을 매번 하고 시작했는데, 그중 웨이브도 있었다.

그래서 ‘접영은 의외로 잘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몸이 기억하고 있던 웨이브가 발산되어 촥촥 앞으로 나가는. 잠재된 웨이브 파워와 근력 파워가 만나서 꼴찌의 반란 같은 찬란한 순간을 만들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그런….

물론 진지하게 믿지 않았고, 그런 영화 같은 순간도 오지 않았다.



인어처럼 나아가 보자


접영 첫 시작은 강사가 도와줬다. 차렷 자세를 한 후 물 위에 엎드려 떠 있으면 강사가 목을 잡고 그 웨이브를 느끼게 움직여 줬다. 진도가 비슷한 사람이 내 바로 앞에서 먼저 했는데, 코에 물이 많이 들어가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잔뜩 얼어붙어 내 차례를 기다렸다. 게다가 강사가 숨을 평소보다 세게 뱉지 않으면 코에 물이 들어간다고 주의를 주었기에 더 걱정스러웠다. 덜 세게 뱉어서 물이 코에 들어가면 어쩌지? 숨을 너무 세게 뱉어서 강사가 머리를 꺼내 주지 않는데도 숨이 차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차렷 자세로 서 있었더니 강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왜 이렇게 긴장해요!”


차렷 자세가 원래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거고.. 까만 수경을 쓰고 있어서 눈도 안 보일 텐데 어떻게 긴장한 걸 알아챈 거지…? 내가 그렇게까지 투명한 인간이었나?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나는 늘 투명한 인간이었으니까….


강사가 목을 웨이브로 당겨주자 인어가 물살을 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아래로 꾸물럭 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라 진짜 신기했다.


와 접영 마음에 드네!


라고, 또 섣불리 판단했다.




당연히 안 나가지


강사가 끌어준 후부터는 스스로 나가야 했는데, 역시나 단골 문제점이 또 생겼다.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몸이 위아래로만 움직이는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의아해지기도 했다.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아서 웨이브를 좀 더 격하게 줘봤더니 너무 깊게 들어가 바닥에 코를 찧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웨이브가 커다래서인지 다리가 뒤로 넘어가서 허리가 꺾일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발에 힘을 주고, 추진력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서 살짝 발을 차면서 연습했다. 그랬더니 강사가 귀신 같이 알고 지적했다.


“내가 다리 언제 알려줬어요!”


흑.. 안 알려줬어요!!


다시 나는 기분상 허리가 꺾일 거 같은 느낌이 들고 앞으로 전혀 나가지 못하면서 연습을 했다. 무릎을 아작 낼 거 같은 평영에 이어 허리를 뒤로 접어버릴 거 같은 접영. 주 2회 수영 초보반이 이렇게 위험한 거였다니.



잠수 연습 시작


접영을 그날 처음 시작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는데, 각자 연습을 조금 하던 중 수영장 끝으로 소집되었다. 우리 셋을 마주하고 강사가 말했다.


“자, 물구나무!”


우리 셋은 대꾸도 못하고 서로 눈치를 봤다.


“물구나무서세요! 물구나무! 물구나무 몰라요?”


물론 물구나무는 안다. 그리고 수영장 안에서 실제로 물구나무를 선 사람을 본 적도 있었다. 자유수영 라인의 벽면 쪽에서 잡귀를 쫓아주는 장승처럼 미동도 없이 계시던 아주머니. 나는 감히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뵐 생각도 안 했었다.


물구나무.png 물구나무 장승 아주머니



자신은 없었지만 우선 시도해 보기로 했다. 강사도 우리가 못할 걸 알면서 시키는 눈치니, 물구나무를 너무 잘 서서 코에 물이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물구나무를 서 보려고 상체를 담그고 손을 내밀었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수영장 바닥을 짚지 못했다.


와… 부력이라는 게 진짜 센 거구나…


수영을 하기 전까지는 부력이 이렇게 강한 건지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배영을 처음 할 때, 신뢰게임을 하는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던 거였지. 부력은 쉽게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쉽게 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강사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웨이브를 해서 물살을 뚫고 바닥을 닿는 걸 보여주었다. 그리고 접영반 세 명은 해녀처럼 바닥 짚고 오기를 연습했다.


바닥을 짚으려면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의 무게 중심을 약간의 웨이브로 이동시켜야 했고, 그게 접영에 아마도 도움이 되는 듯했다. 그런 움직임이 나름 재미있어서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몇 분 더 연습했다.


옆에서 같이 연습하다가 바닥 짚기를 먼저 마스터하신 분이, 헤매는 나에게 머리를 좀 더 움직이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머리를 안 움직였어요." "또... 머리를 안 움직였어요." "또..."


라고 같은 조언을 반복해서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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