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재개장,쓰잘데없었던 걱정 고민들
공사에 들어 가 몇 개월 문을 닫았던 수영장이 다시 오픈했다. 그전에도 자신을 잊지 말라며 간간이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오던 곳이었지만, 오픈이 임박하자 연락이 잦아졌고, 문자에는 수영장 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가 담겨 있었다.
쉬는 날이 길어지면서 막연히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막상 수영장에 다시 갈 수 있게 되니, '수영을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거짓인 걸 깨달았다.
수영을 다시 하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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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수영장 공사로 며칠씩 미뤄져서, 추가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나의 수업 시작은 7월 중순부터였다. 회원마다 시작일은 각기 달랐고, 개장일부터 시작하고 싶다면 시작일까지의 추가금을 내야 했다. 결국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이었다.
수영을 7월 1일부터 시작하거나,
원래 수업 시작일인 7월 중순부터 시작하거나.
그런데 그 선택지는 내가 쓰지 않기로 했다. 언제부터 수영에 갈지만큼은 수영장을 같이 다니는 JJ의 의견에 온전히 따르기로 했다. 나는 분명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수영을 계속 미룰 게 뻔했다.
물론 JJ는 고민도 없이 7월 1일부터 수영하는 걸 선택했다… 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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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좀 꺼려지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자잘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뭔가 하기 싫은 거에는 엄청난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엄청 큰 이유들이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거고, 이유가 합당했기에 죄책감도 없이 시원하게 마음 편히 놀았을 테니까.
코로나는 늘 마음을 괴롭히던 애였고, 수영 다닐 때 힘들었던 기억들도 내 발목을 잡았지만 내 특수한(?) 상황이 좀 거슬렸다.
나는 중급반에 갔으나 사실 가지 않았다(??). 내 연약한 마음가짐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 상황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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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반에 있을 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영법을 전부 할 수는 있게 되었다. 물론 부족한 부분은 너무 많았지만, 물에 빠진다면 누가 던져 준 구명튜브를 잡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정도는 어느 영법으로는 갈 수 있게 되었다.
영법을 전부 알게 된 것도 좋았고, 친절하고 상냥한 할머니들이 친목을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나름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수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컨디션이 굉장히 좋고, 감이 살짝 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이 감은 한 번 왔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하필이면 강사의 눈에 띄어 중급반에 올라가게 되었다. (컨디션에 따라 실력이 좀 왔다갔다 하는데, 그날은 내 생애 가장 베스트 실력을 보인 날이었다.)
주변에 할머니들이 축하를 해 주며, 중급반에 가서도 잘할 거라고 해 주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할머니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보기에 체력 천재 운동 천재 JJ도 중급반에서 좀 버거워하는 걸 봤기에 중급반에 올라가서 좋은 것보단 두려움이 컸다. 오리발도 준비하고(이미 예전에 사두었다) 다음 수업까지 내내 마음을 졸였지만, 결국 중급반 수업을 받지는 못했다. 코로나, 수영장 공사 때문에 그날 이후로 수영장을 한 번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확히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등록하면서 알게 된 건, 나는 아직 초급반으로 등록되어 있는 상태였고, 중급반 남는 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초급반에 속해 있는 나는 바로 중급반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걱정은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초급반 실력인데 중급반 가야 하는데 초급반에 있어도 되는 건가?라는 복잡하고 께름칙한 느낌...
오랜만에 수영을 다시 하는 것에 두려움이 크니, 신경 쓰이는 것들이 아주 큰 가시처럼 여겨졌다. 이 가시는 잊을 만하면 자꾸 건드려져 두려움만 키웠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사가 왜 초보반에 다시 왔냐고 따진다거나 할머니들이 여기 온 이유를 물었는데 대꾸를 못한다거나 하는... 굉장히 일어날 법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도 아무 상관없는...
나도 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수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찾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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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두려움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걸 몇 가지 원칙을 세워 놨는데, 그중에 하나가 내가 두려움을 가지는 선택을 남이 해 줄 수 있다면 그걸 따르는 것이다.
수영장에 다시 가기가 두려워지면서 어떻게 할지를 온전히 JJ에게 맡긴 것도 그 원칙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결국,
정말 안 왔으면 했던 수영장 재개장 날이 왔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수영장 안은 추웠고, 수영은 힘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수영을 했더니 어깨가 아팠고, 실력은 진짜 형편 없어졌다.
그렇지만 나는 초보반에 잘 들어갔고,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내가 괜히 꺼려하던 모든 것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걱정하던 일은 전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