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만 1년을 했던 중급반
수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중급반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씩 실력이 늘고, 할 줄 아는 영법이 늘어나면서 J가 전해 주는 중급반 이야기가 점점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중급반에 대한 고민은 장장 1년이나 된다. 작년 이맘때쯤 중급반에 진급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초급반이었던 할머니들과 작별(?) 인사도 하고, 잘할 거라는 격려도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 확진자 급증세로 중급반 수업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수영을 다시 일시 정지했다. 그 후로 수영장 공사를 했고, 화이자 백신 부작용으로 피부병을 두 달 앓았고, 설상가상 발목까지 삐면서 2021년에는 수영을 한 날보다 수영을 하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다.
수영에 대한 미련(?)으로 한 달씩만 수영을 연기하다가, 위드 코로나 얘기가 나오면서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수영하기 좋은 계절은 전부 지나갔고, 춥고 어두운 가을이 왔다.
복귀는 초급반으로 했다. 그렇게까지 잘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 쉬어서 그런지 수영 실력이 확실히 퇴보했다. 초급반 중에서도 중위권 정도 되는 실력인 것 같았다. 분위기도 사뭇 달라져 있었다. 초급반 할머니 친구들은 전부 없어졌고, 수영 선수로 진로를 바꾸려는 거 아닐까 싶은 승부욕 강한 남자들이 많았다.
이렇게 된 김에 초급반에서 기초를 잘 다지자고 마음먹었다. 오래 쉬었다가 다시 운전대를 잡아도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수영을 몸이 익히도록.
수영을 시작하면서 그전에 삐끗했던 발목에 다시 통증이 생겼다. 제대로 발장구를 칠 수 없어서 속도가 느려졌고, 자세도 흐트러졌다. 그리고 발목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영을 또 쉬고 싶지는 않았다.
위드 코로나든 위드아웃 코로나든, 수영을 하고 싶다고 언제든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 할 수 있던 것들이 줄어들면서, 할 수 있는 것에 간절함이 더해졌다. 코로나는 참 많은 걸 바꾼 것 같다.
그래서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수영을 다녔다. 침을 맞은 직후에는 발목이 훨씬 더 아파져 절뚝거려야 할 정도였다. 내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침을 맞으면서까지 수영을 하다니 스스로 웃기기도 했다.
자유형을 할 때는 거의 상체만 움직여 수영을 했다. 원래부터 발차기가 느려서(발차기 속도만큼은 초보반 꼴찌 정도 되는 것 같다) 속도에서는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평영이 좀 문제였다. 수업에서 평영을 좀 많이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발목이 좀 안 좋아졌다.
아, 발목 통증으로 인해서 좋은 점도 하나 생겼다. 어쩔 수 없이 힘을 빼서 하다 보니, ‘부드럽고 여유롭게 수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뭘 하든 늘 긴장하고 자세가 뻣뻣했었는데, 이런 일도 생기다니...ㅋㅋ
중급반을 보면 정말 장난 아니다..ㅠ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수영을 하고 있고(오리발을 끼면 진짜 빠르다), 다이빙을 하질 않나.(나는 물 안에 들어갈 때도 꼭 사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의 표정도 다르다.
초보반 사람들은 물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때문인지 결의에 찬 것 같은 표정을 하는 경우가 많고, 중급반 사람들은 대체로 상당히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영법을 전부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연습할 거리는 늘 있었다.
속도를 높이거나 너무 힘들면 바로 자세가 무너지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했다. 어깨 롤링에 신경 쓰면 팔을 쭉 뻗는 걸 잊고, 팔을 쭉 뻗다 보면 숨 쉴 때 고개를 살짝만 들어야 하는 걸 잊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되면, 접영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두 번 저으면 도달할 정도만큼의 길이를 수영하게 했다. 그러면서 강사가 피드백을 해 주곤 했는데, 중급반으로 올릴 만한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시간만 되면, ‘중급반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자세를 엉망으로 하긴 싫으니, 자세는 신경 쓰되 엄청 잘한다는 느낌은 안 들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는 방법 따위는 없으니, 동작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 정도?
강사가 동작에 대한 피드백만 주고 끝내면 그제야 좀 안도했다. 적어도 다음에는 초급반에 있을 수 있겠구나.
수업이 끝나고 강사가 “다음 주에 중급반에 가도 되겠는데요?”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저 발목이 안 좋아서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중급반을 갈 수도 있는 상황을 몇 개월 시뮬레이션한 것치고 너무도 부족한 답변.
“그래요. 중급반 가면 오리발하는데, 오리발이 발목에 무리가 되니깐” 상냥한 강사는 그렇게 물러났다. 너의 발목 따윈 중급에 재물로 바치고 올라가라고 할 만한 강사는 없을 거다.
그런데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럼 나는 중급반에 언제 올라가지?
수영은 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중급반에 올라가지 않는 발목 부상병으로 남을 수도 없었다.
그 후로는 수업을 갈 때마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중급반 올라가야 하나? 발목 괜찮나? 아픈가?
수영이 조금 안 되면 안 가야겠다 싶었다가, 잘되면 가야겠다 싶었다가, 발목이 아픈 날에는 안 가야겠다 싶었다가 고민은 끊이질 않았다.
월초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달을 넘기는 시점이 반을 바꾸기에 좋았다. 그래서 11월 마지막 수업까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11월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수업이 됐다.
마지막 수업까지 고민해 봐야겠다며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기 직전에 강사가 11월 마지막 날 휴가를 가게 되어 못 온다고 하는 것이다..! 반을 바꾸려면 강사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지금 말하지 않으면 12월에도 초급반 수업을 들어야 했다.
어쩌지, 어쩌지.
파이팅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흩어졌고, 강사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수영장 사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강사가 나가기 전에 말을 해야 했다. 계속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
강사가 돌아봤다.
“저, 다음 달부터 중급반 올라가도 될까요?”
“아 가시려고요~? 오리발 있으시죠?”
“네”
“중급반 선생님한테 말해 놓을게요.”
“네”
두 달을 넘게 고민했던 것 같은 중급반 올라가기는 이렇게 끝났다. 11월 말 마지막 수업을 끝으로 나는 이제 중급반에 올라간다.
벌써부터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