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는 본래 피부색보다 조금 더 하얀 부분이 있다. 호주 어학연수 시절 요리를 하다 다친 상처다. 원래 더 붉었던 피부색이 지금은 더 하얗게 바뀌었다.
눈에 띌 정도는 아니라 잘 모르고 살지만, 어쩌다 가만히 손을 들여다 보면 이 상처를 꼭 발견한다. 그리고 이 상처는 그 시절의 아픈 기억을 불러온다.
스탠드형 채칼에 살같이 벗겨져 나갔던 기억, 몇 초가 지나서야 그 상처 위로 조금씩 맺혀지던 핏방울들. 온몸에 돋았던 소름과 경직된 몸. 그리고 그 기억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온다.
그 시기는 내 인생의 길고 긴 우울함의 막바지 시기였다. 그때 참 힘들었지. 그래, 지금은 꽤 괜찮네.
대부분의 상처는 나쁜 기억을 불러온다. 그리고 악몽에서 깬 후의 안도감처럼, 그 기억의 불러오기가 끝나면 안전한 현실에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