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년원 접견(feat. 소년사건변호사)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변호사

by 정현주 변호사


어제는 의왕시에 있는 소년원으로 접견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고 비다 오다 말다 한 이상한 날씨였다. 소년원은 남양주 봄 사무실에서는 운전으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소년원은 검색으로는 나오지 않고 '고봉중·고등학교'로 검색을 해야만 나온다. 티맵에도 마찬가지로 '고봉중·고등학교'로 검색해야 찾아갈 수 있다. 좌회전을 하여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 편에 작게 민원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넓지는 않지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접견이 몰려있는 3시쯤 도착해 보니 주차를 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길을 따라 더 들어갔다. 나는 막다른 길에 주차를 하고 장우산과 두꺼운 기록을 가지고 슬슬 걸어 나왔다.


고봉중고등학교로 불리는 소년원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도 막상 소년원 접견을 가 본 경험은 많지 않다. 어쩌면 소년분류심사원에 가 본 경험도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년사건은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특이한 사건으로 봐야 하고, 그 취지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일반 형사사건의 피의자를 대하듯이 소년들을 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형사사건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소년사건들은 맡을 때마다 진심으로 소년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일환으로 나는 소년들을 접견하러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좋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부분의 형사 피의자들은 이미 경직되어 있고 충분히 굳어져 어떤 말로도 소용이 없다는 느낌을 주지만, 소년들은 말랑말랑한 스펀지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선 보조인을 쓸 정도의 사건이라면 부모님은 보호소년에 대하여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라면 소년이 아무리 방황을 하고 재범을 많이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개선이 될 여지가 많다.


소년들이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이 되면 무조건 국선보조인을 쓸 수 있다. 나는 예전 사법연수원이었던 시절 국선보조인으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국선보조인은 소년들이나 법정대리인의 의사와 관련 없이 법원에서 정하는 것이므로 그때는 소년분류심사원에 찾아가 소년들을 접견했다. 물론 분류심사원에 위탁될 정도라면 최소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있었거나 재범 사건이 이미 여러 건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분류심사원에서 만난 소년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 옆방에 있는 누구는 분류심사원에 있는 동안 부모님이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아요. "


그렇게 무관심으로 방치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보조인, 상담 선생님을 만나더라도 좋아지기 어렵다. 범죄에 방치된 소년들은 사실 '방황의 기로'에 빠졌지만 이 방황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물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년들 역시 이 방황의 늪에서 나가고 싶어 한다. 나는 소년들과의 대화에서 분명히 그런 느낌을 받으며, 만약 그 주위에 믿음을 주는 부모님이 한 분이라도 묵묵히 서 있으면 무조건 잘 될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선 보조인을 쓸 정도의 소년사건이라면 그 내용을 불문하고 그 소년의 미래는 일단 밝다.


소년원은 사실상 학교와 같다. 실제 모습도 학교와 같이 되어 있다. 소년들은 제일 처음 입소를 하여 하루 종일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 방에 3명이 같이 생활하지만 현재는 더 많은 인원이 수용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방은 생각보다 무척 좁다).


소년원 안에는 유채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내가 접견을 위해 들어갔을 때 마침 대부분의 소년들은 체육관에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족구장, 농구장이라고 씌여진 팻말이 야외 운동장으로 보였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유채꽃이 흐드러진 야외 운동장을 거쳐 아이들이 생활하는 방들을 몇 거쳐 접견실로 갔다.


소년원의 정경, 유채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접견실이라고 딱히 시설이 좋은 것은 아니다. 테이블을 하나로 두고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그래도 보조인 접견은 시간제한이 없다. 오래간만에 만난 소년은 날 보고 멋쩍게 웃는다.


" 잘 지내고 있어? 아픈데는 없지? "


소년은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도 다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며, 이곳 생활도 많이 익숙해졌고 또 선생님한테 칭찬도 많이 듣고, 생활을 잘만 하면 금방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 오늘은 그냥 얼굴 보러 왔어. **처분 받고 나도 걱정이 되어서. 그래도 얼굴이 좋아 보이니 좋네. "


그리고 나는 물론, 이곳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어떤 소년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또는 시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아이들은 집을 떠나 완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행동을 무조건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에 완전히 혼자가 되어보는 것은 사실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의 압박 없이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나는 소년에게, 나의 방황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 방황은 나쁜 것이 아니야. 그런데 정말 멀리 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어. 그렇지? "


나는 변호사로서 소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이 행복하다. 그들은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때때로 나에게 의지하면서 용기를 얻기도 한다. 나는 사실상 그들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아주 잠시 잠깐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선생님 정도는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누구나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줬던 선생님들이 있다. 하지만 이내 자라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선생님의 얼굴이나 이름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 선생님은 원래 그런 존재다. 잠시 머무는 등대 같은 존재.


돌아오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 세워 둔 차 안에서 마침 내리는 비를 잠시 바라보니 마음이 무척이나 평온해짐을 느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혼의시기, 결정의 문제(feat.남양주이혼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