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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앞둔 부부들의 모습(남양주이혼전문변호사)

우리는 더 빨리 헤어졌어야 해.

by 정현주 변호사


이혼을 마음먹게 되는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이혼을 앞둔 부부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대부분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 변호사님, 제가 배우자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나요? '



어느 날 한 의뢰인이 나에게 물었다. 그는 오랜 혼인생활 동안 외벌이로 살았다. 아내는 아이를 소위 말하는 강남8학군의 번듯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결혼과 동시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가 가진 직업이나 환경이 결혼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그는 아내의 물욕, 강남에 대한 욕망에 점점 더 지쳐갔다.


아내는 계속 경제적인 결핍에 시달리며 의뢰인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는 압박에 못 이겨 사업을 해보기도 했지만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자기 또래의 어느 가장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평균 월급도 높았고 무엇보다 매우 가정적이었다.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온다거나 친구들과의 일을 핑계로 외박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집에 오면 늘 숨이 막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내는 자신의 기대대로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오르지 않자 계속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는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의 정서까지 고려하게 되었다.


' 당신은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잖아. 지금 나를 버리려는 거야? '



집에서 아내는 늘 아픈 사람이었고 약자였다. 그렇게 때문에 아내는 늘 그가 아내를 보살피거나 부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어쩌면 그에게 완벽하게 의존을 하기 위해 저렇게까지 아픈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아이는 성년이 되었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오히려 끝도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뿐이다. 이제는 정말로 헤어지고 싶다. 허울뿐인 혼인 신고라도 이혼이 되어 완전한 정리가 가능하다면 한결 자유로운 마음이 들 것 같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또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그를 보면서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 참 이상하죠,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연애만 할 때는 어느 누가 '그만하자.'라고 하면 바로 헤어지는 것이 남녀사이인데 말이에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중요하지도 않고 환승이별을 당해도 소송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왜 혼인 신고를 하게 되면 이별이 왜 이렇게 어려워지는 걸까요? '


그는 수긍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한다.


'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자신을 책임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 거예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거고, 내가 상대방을 책임지지 못했다고 끝도 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더더욱 없어요.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옭아매려고 하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일 텐데, 그런 것들을 무시하면서 죄책감을 심어준다는 것은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는,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요? '


그를 위로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이별의 모습을 본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싫었거나 나쁜 상대라도 이별 앞에 완전히 후련해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또 많은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가 남을지도 모른다. 만남과 달리 이별이란 아름답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상대방의 밑바닥을 보고 온갖 정이 떨어지며 무수한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서로의 만남과 이별은 절대로 일방적이지 않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년 쌓여온 인연의 고리는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파탄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버린다'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이별의 때란 그것이 찾아왔다면,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별 또한 만남과 같이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별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거의 대부분 '우리는 더 빨리 헤어졌어야 해.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처럼 이별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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