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딸은 요즘 너무 귀엽다.
요즘은 만 5세의 딸이 너무 귀엽다. 포동포동 하게 살이 오른 얼굴도 그렇고, 볼록한 배도 그렇고 어느 날부터인가 생긴 눈썹 위의 점도 그렇고. 최근 빠진 앞니가 신기한 듯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도 예쁘다.
한 달 전쯤, 새벽에 야채를 썰다가 왼쪽 손가락 밑 부분을 깊게 베었다. 새벽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도 했지만, 집에는 딸을 위해 상비된 연고와 밴드만 있었기에 급한 대로 후시딘을 바르고 딸아이의 뽀로로 밴드를 붙였다. 그다음 날, 딸은 내 손에 붙어 있는 밴드를 우연히 발견하고 곧장 온다.
나는 딸이 내 손가락에 붙어 있는 뽀로로 밴드를 떼어내려고 온 줄로만 알았다. 일 년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당시에도 손을 베어 딸아이의 밴드를 붙이고 있었는데 딸은 내가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왜 허락도 없이 자기 밴드를 썼느냐며 울었던 것이다.
' 엄마가 아파서 잠깐 빌려 썼어. '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딸은 자신의 허락도 없이 자신의 밴드를 썼다면서 억지로 밴드를 떼어냈다. 갑자기 밴드를 떼어내니 살과 붙어있는 자리도 그렇고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딸은 아랑곳없었다. 딸은 '미안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제대로 된 밴드를 상비했더라면 좀 더 나았을 텐데.. 달려오는 딸을 보면서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딸은 이번에는 내 손에 붙어 있는 뽀로로 밴드를 보면서 내 손을 잡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 엄마 어디 아파? '
' 응~ 잠깐 다쳐서 너 밴드 빌려 썼어. 엄마 것이 없어서. '
딸은 내 눈을 바라보고 다시 밴드가 붙어 있는 손가락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 엄마가 다치면 내 마음이 아프잖아. '
응? 딸은 대체 이런 말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딸은 더 이상 내가 자신의 뽀로로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다치면 내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는 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딸의 키에 맞춰 잠시 앉아 기특한 듯 머리를 쓰다 담았다.
' 응, 고마워. '
생각해 보니, '너가 아프면 내 마음이 아파. 그러니까 다치지 마. '라는 말은 내가 딸에게 여러 번 했던 말이다. 딸은 내가 했던 그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더라도 딸이 일 년 동안 정말 많이 자란 것 같다. 늘 그렇지만 남양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최근까지 딸에게도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다. 멍 때리는 시간조차 내 머릿속에는 딸이 많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 만 5세가 되면 대체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하고, 또 미숙하지만 자신의 감정들을 표현한다. 종종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기도 한다. 유아적이고 일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딸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내가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마음이나 표현을 아이한테 의식적으로 건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의 마음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무지의 세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색은 달라진다. 사랑이 충분치 않은 사람이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고단한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많은 것들을 나누고 표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위로를 얻는다.
딸은 웅크리고 있는 내 등을 파고들어 통통한 얼굴을 나에게 기대고 생각지도 못하게 위로를 준다. 아마도 생명이란 존재가 그러하듯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온기를 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 너가 아프면 내 마음이 더 아파. 내가 아픈 것이 더 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