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그녀를 무척이나 외롭게 한다.

인생의 사랑은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by 정현주 변호사


어느 날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당히 엄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외부의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한없이 포용력이 넘치는 사람이면서, 반대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거나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그러한 사실을 한참이 지날 때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들을 거치고 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 그런 결점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오늘처럼 한없이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의 이야기이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찾아온 의뢰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미 하늘에는 어둑 어둑한 밤이 낮게 드리웠고, 빌딩에는 아무도 없이 조용했으며 직원들은 이미 6시가 넘어 모두 퇴근했다. 비는 소리 없이 내리고, 상담실에는 그녀의 목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냥 그녀의 이야기를 길게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의 어느 한 부분이 어딘가 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녀는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상호 합의하에 아이는 갖지 않았다. 남편은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무척 잘난 사람이다. 준수한 외모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 나이스 한 사람임이 틀림없지만 그녀를 무척 외롭게 한다.


일례로 언젠가부터 남편과 그녀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다. 그리고 남편은 무심결에 그녀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너는 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해.'라는 것을 시위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일이 바쁜 거라 생각해서 그녀는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했다. 남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늦게 들어오거나, 술에 취해 들어오면서 누구랑 만났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않고 당연한 것을 묻는 그녀에게 짜증을 내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려고 해도 남편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에 대해서도 남편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사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최소한의 배려를 느끼고 싶었던 것뿐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남편이 정확하게 한 달에 얼마나 벌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남편이 그녀에게 제대로 수입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이 사는 집에 나가는 관리비, 최소한의 생활비는 남편이 부담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부부라면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상황에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고 배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어쩌면 남편에게 따로 의지하는 상대가 생긴 것일까? 그녀는 생각했다.


남편은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는 걸까?


물론 알 도리는 없었다. 그녀에게 남편은 굉장히 철두철미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서로의 관계에서 '결별'이란 말이 구체적으로 나온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서로의 관계가 이미 많은 부분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입에서 먼저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ㅡ 관계가 설사 파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먼저 관계의 끝을 구체화하는 것은 무척이나 두렵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연애 기간을 합쳐 십 년이 넘는 기간을 함께 산 부부라면 보일 수 있는, 어쩌면 흔한 부부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 나를 투영해 봤다. 아마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사랑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 과정이거나 또는 변한 사랑을 정의 내리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것들, 또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미 '가졌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사실 내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아주 쉽게 떠나갈 수 있는 것들이며, 사실 나에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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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왜 나에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가졌던 것일까? 그날 밤, 나는 퇴근을 하고 식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드디어 나는 나를 제외한 나의 주변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역시 나는 생각하는 중이다.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받으면 당연히 베풀고 나누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잘 알고 있다. 사랑은 충분히 표현하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무척 당연한 삶의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받는 사랑은 절대로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사랑이란 삶에서 가장 가치로운 일이지만, 인생에서 절대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내가 없다. 많은 것들의 생각을 갈무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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