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변호사님! 이혼을 하고 싶지만 사실 두려워요.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변호사

by 정현주 변호사


어느 늦은 오후, 상담을 요청한 의뢰인이 했던 말이다.


' 변호사님, 저는 사실 두려워요. 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떨구고 열심히 적던 메모지를 바라보았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손을 잡지는 않는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공감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차갑고 냉정한 현실을 말해줘야 하는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함께 울어 줄 친구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다 자랐고, 엄마가 이혼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선택을 응원해 주고 있다고도 한다. 아이들이 응원할 정도니 물론 부부생활에는 문제가 있었다.


남편은 겉으로는 직업도 번듯하고 건실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집에서는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누구도 배려하지 않았다. 늘 자기 기분이 말을 내뱉고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일례로 몇 달 전에는 자기 멋대로 가족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행을 가기 하루 전날, 왜 자기가 이토록 고생하는 것을 알아주지 않느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다. 그리고 갑자기 여행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그만큼 생활비에서 공제하겠다고 통보한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나쁜 남편 ㅡ 바람을 피운다거나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ㅡ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미칠 노릇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없었지만 같이 있을 때는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화를 냈다.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언제나 그랬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 돈도 잘 벌어오고 성실해 보이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녀조차도 불완전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다른 부부들도 이럴까?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이 정도의 문제가 있을까? 말 그대로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그런 사정 ㅡ 외도라든가 폭력 ㅡ이 있어야만 이혼이 정당화되는 것일까?


남양주지원 가사조정위원 정현주 변호사


그런 생각을 하며 산 지도 벌써 20년이 넘게 흘러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점점 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으며, 이혼녀로 혼자되는 것은 예전보다 두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좀 더 나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빨리 헤어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남편이 아예 악인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ㅡ, 남편은 그렇게 나쁘게 굴다가도 기분이 좋으면 세상 다정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오래전 연애를 할 때의 모습처럼 다정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생활비도 적게 가져다주는 편은 아니었다. 비록 수입을 완전히 오픈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ㅡ 이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들은 이혼을 하고 난 이후의 현실적인 상황 - 재산분할, 양육권 등 - 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고 나서 마음을 이야기한다. 나의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줄곧 듣고 있다. 법적인 판단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비슷해 보이는 가정일지라도 각기 다른 사정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곤 한다.


그리고 무더웠던 8월의 어느 여름 날, 시원한 주스를 마시면서 그늘진 곳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 아마 그녀가 바라는 것도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혼으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그리기에는 무엇인가가 부족한 것이다. 그것을 그녀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혼이란, 상대가 정말로 싫을 때 하는 것이다. 이혼이 되려면 둘 중의 한 명은 매우 명확하고 분명해야 가능한 것 같다. 만약 현재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ㅡ 좀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저절로 극복이 되기도 하고 또한 분명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패하지 않는 변호사 선임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