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루앙프라방, 조용한 사원의 도시

미얀마 바간(bagan) 여행의 준비

by 정현주 변호사



바간(bagan)은 미얀마를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면서도 정확하게 잘 알지 못했던 도시이다. 나의 여행 스타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항공권을 먼저 결제하고 그 이후 마땅한 숙소를 찾아보는 것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양곤은 쉐다곤 파고다를 제외하고는 며칠씩 머물기는 다소 심심한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간은 세계 3대 불교유적지로 불리며 도시 전체가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라고 한다. 다만 바간은 양곤에서도 차로 10시간 남짓 가야 할 정도로 상당히 거리가 멀고 사원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e- bike 같은 교통수단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무려 1995년부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였던 라오스 루앙프라방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벌써 10년도 더 된 오래전의 여행 기록이다.


라오스 방비엔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있었다. 거리에 나와있던 라오스의 아이들.



나는 태국 방콕을 거쳐 라오스로 들어갔다. 당시에 라오스를 입국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 중에 하나였던 야간버스를 타고 올라갔는데, 태국의 야간버스는 정말로 잘 되어 있어서 180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자를 상당 부분 뒤로 젖혀서 누울 수 있었고, 간단하게 요기할 빵과 음료수도 챙겨주었다. 하지만 태국은 어딜 가나 에어컨이 지나치게 빵빵해서 무조건적으로 긴팔을 입고 담요를 덮어야만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방콕에서 라오스를 들어가는 버스는 농카이(태국 국경)에서 잠시 멈춰 입국심사를 하게 된다. 대략 10시간 정도를 밤새 차를 타고 올라가서 새벽 5시경에 농카이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 즈음에는 버스 안에 너무 오래 있으면서 잠이 들다가 깨다가를 반복했기 때문에 시간 개념이 무척 흐릿해져 있었다. 이미 방콕에서도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비엥을 거쳐 우연히 들어가게 된 루앙프라방은 말 그대로 사원의 도시였다. 어떤 나라에 가게 되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도시나 사원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물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도시도 있지만). 그렇게 마음을 끄는 장소와 도시는 그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것을 어떻게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나라는 나에게 맑은 구름과 같은 느낌으로, 또 스산하거나 짙은 회색의 느낌으로, 아름답거나 무미건조함으로 남는다. 나에게 라오스는 루앙프라방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던 불교의 나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라오스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나라는 아니었다. 지금의 미얀마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라오스 루앙프라방 곳곳에 있는 사원과 승려들


루앙프라방은 내 느낌에는 굉장히 작은 도시였다. 주위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었고 걷다 보면 드문드문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는 라오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바게트 샌드위치, 수박주스, 진한 커피 등을 팔았다. 라오스에는 '카오삐약'이라고 불리는 쌀국수를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베트남보다 더 맛이 좋았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맛있는 칼국수 '카오삐약' 면 위에 올려진 양념장이 굉장히 한국적인 맛이다.



태국처럼 라오스도 건기와 우기가 있었는데,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건기였다. 낮에는 무척 더웠다. 땅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면 아지랑이가 올라올 정도로 숨이 막히는 더위였다. 많은 여행객들과 라오스인들은 낮에는 전혀 돌아다니지 않은 채 카페에 드러누워 부채로 땀을 식히거나 아예 낮잠을 잤다.


라오스의 낮은 시간이 멈춘 듯 정적만 흘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용감하게 산책을 나섰다가 맹렬하게 타오르는 햇볕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근처의 카페에서 목을 축이기로 했다. 너무 더워서인지 허기가 지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느릿느릿 걷다가 배가 고프면 쌀국수나 샌드위치 등을 먹고, 또 끊임없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목을 축였다. 라오스는 그렇게 강제적으로(?) 여행객을 느릿느릿 움직이게 만들었다. 라오스의 시간은 정말로 느리게 흘러간다.




특히 라오스 루앙프라방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는 사원의 도시였다. 지금도 머뭇거리는 나 홀로 여행객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혼자 여행하던 그 시절, 굉장히 조용하고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그곳에 놓고 온 아련한 기억들이다.


여행이란 잠시 그곳에 머물다 오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아무것도 매이지 않는 상태에서의 여행은 그 자체가 일상이 된다. 일상을 잊으러 가는 것이 아니고 잠시 휴가를 다녀오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돌아올 곳도 없었던 나에게는 그 순간순간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곳에서의 낯선 삶.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내가 선택한 이곳, 한국에서의 삶도 길게 보아서는 긴 여행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머물게 된 여행지.


지금으로 돌아가 보자. 최근의 나는 오래간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거치며 오래전의 여행지들을 마음속에서 더듬어 보고 있다. 숱한 기억들 속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가 보지 못했던 곳을 꿈꾸고 있다. 이를테면 미얀마의 바간 같은 곳이다. 바간을 찾아보면서 기억났던 것은 오래전 인도의 고아 주(goa)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옛날 여행지를 다시금 되돌리고 있는 것일까?

시간을 되감고 싶은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조금 더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혼자 있는 시간들은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그렇게 우물의 마지막 바닥까지 도달하여 나를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라오 실크는 유명하다. 라오스 밤시장에 가면 라오 실크로 만든 스카프를 살 수 있다.
루앙프라방에도 공항이 있다.


* 이 글은 미얀마 바간을 가기 위한 예행(行)적인 글이다. 여행지를 검색하고 계획하며 나는 숱하게 많은 수정과 변경을 거쳐왔기에 또 다시 원래의 계획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찌되었든 기록하기 위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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