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옷은 어디에서 사세요?
2017년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한지도 벌써 햇수로는 7년이 지나가고 있다. 바로 변호사 생활을 하지 않은 탓에 동기들보다는 연차가 짧은 편이지만 어찌 되었든 개업을 한지도 벌써 2년이 되었고 변호사로 생활을 한지도 생각보다 꽤 되어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한편 전업주부의 인생과는 많이 다른 여자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어서인지 많은 동창이나 친구들이 종종 나의 생활을 궁금해한다. 옷이나 신발은 어디서 사는지, 늘 정장만 입고 다니는지, 늘 명품 가방만 사는지 등등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0대의 여자 변호사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돈? 이 많이 들어간다.
1. 취미 생활은 여행
나는 종종 ' 변호사님은 취미가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변호사들의 상당수는 골프가 취미이다. 그래서 필드에도 나가고 모임을 가져 스크린골프를 치러 가기도 한다. 그 외에 테니스, 등산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대부분 사람들과 어울리는 취미를 영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는 마땅히 취미생활이라고 할 만한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다. 또한 나의 취미라고 할 만한 것들은 대부분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책을 읽는 등 영업활동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다소 오타쿠적인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업을 시작했던 작년에 비해 최근에는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것들을 조금씩 시작하려고 생각하고, 또 나아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옛날부터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개업을 하고 나서는 여행이라니 꿈도 못 꿀 정도로 바빴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시간을 빼려고 노력한다. 다음 달 연말에는 일 년 365일 바쁜 내가 딸아이와 함께 로마를 가기로 하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부지런히 숙소와 기차를 예약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과연 아직 유치원생인 딸과 13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을지부터가 걱정이지만 딸은 엄마와 여행을 간다고 벌써부터 신이 났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을 갈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기대하는 딸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이처럼 내년에는 몇 달에 한 번씩, 꼭 법원 휴정기가 아니라 단 며칠이라도 나는 내가 원래 보내려고 했던 시간들을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사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요리는 역시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이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를까! 치우는 일, 그리고 또 만드는 일, 또 맛있게 만드는 일 모든 과정에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투여된다. 나에게는 시간이 너무나도 없다. 때문에 대부분 외식이 돼버리고 만다.
일에 매몰되는 요즘은 무엇보다 나의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 나에게는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쇼핑은 인터넷으로.
일이 바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좋아하는 립스틱을 바른다. 립스틱은 백화점에 가서 사지 않고(나는 백화점에 따로 시간을 내서 갈 여유가 거의 없다), 인터넷 면세점에서 한꺼번에 사는 편이다(따라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에 갈 때마다 구매를 한다). 최근에는 구찌 립스틱에 빠졌다. 이유는 엔틱한 케이스 때문이다(사실 어느 브랜드 제품이나 색이나 발림성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인터넷 면세점에 들어갔다가 best로 꼽힌 구찌 립스틱을 보게 되었는데 케이스가 너무 내 취향으로 예뻤다. 자세히 보면 벽지? 같기도 하지만 나는 역시 클래식하거나 고전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정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을 갈 때도 주로 원피스 등등을 입고 다니는 편이다. 내가 입는 옷들도 백화점에서 구매를 한다기보다는 인터넷 정식 쇼핑몰에서 한꺼번에 산다. 쇼핑을 좋아하지만 날 응대하는 직원이 있는 매장에 들어가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특히 백화점 여성복 매장은 대부분의 직원이 너무 친절한 응대를 하려고 한다. 역시 그냥 침대에 뒹굴뒹굴 누워 인터넷으로 옷이든 화장품이든 구매를 하고 마음 편하게 반품을 하는 것이 내 성미에 맞는 것 같다. 또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처럼 전화가 오지 않아 편한 주말에는 집에서 뒹굴뒹굴 누워 쇼핑몰에서 옷을 구경하는 것은 하나의 낙이기도 하다.
보통 어디에서 옷을 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나는 싫증을 잘 내는 타입이라 사는 브랜드도 늘 바뀌곤 한다. 옷은 역시 적당한 브랜드에 좋은 소재를 고르면 크게 실패가 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향이 좋은 사봉, 마인 옷에 빠져 있다.
변호사들은 주로 명품 가방만 들고 다닐까?
물론 필요에 의해 나 또한 명품 가방이 몇 개 있기도 하지만 나는 해마다 명품 가방을 사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가방을 험하게 쓰는 편에 가깝기 때문에, 여리여리한 스타일보다는 짙은 색의 내 작은 키보다는 조금 큰 타입의 아무것이나 막 들어가는 편한 가방을 좋아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남자브랜드인 벨루티에서 가방을 샀다(나는 역시 엔틱한 무늬를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염색을 자주 하기 때문에 미용실은 자주 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집이 있는 다산동으로 미용실을 바꿨다. 미용실이야말로 자주 가기도 하고 가까운 것이 역시 편하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뿌리 염색을 하고 종종 클리닉을 하고 4개월에 한 번씩은 펌을 한다. 미용실을 자주 가지 않으면 머리가 금세 부스스해지고 푸석푸석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3. 변호사라기보다는 오타쿠?
써 놓고 보니 나는 변호사라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혼자 자족하는 사람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변호사의 이미지라는 것이 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즐겨 하며 적당히 쌈닭 기질이 있어 논쟁을 좋아하고 잘 싸우기도 하는 호전적인 이미지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논쟁을 싫어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모임을 즐겨 한다기보다는 마음 편한 곳에서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고,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보일 듯 말 듯 지내는 삶이 좋다. 이런 나의 성향 탓에 변호사의 영업, 즉 수임에 필요한 인간관계를 잘 만들거나 유지하는 재주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혼자 있는 많은 시간들을 잘 갈무리하며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덕분에 나를 찾아오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 속에 있는 삶과 고충을 가늠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들은 꿈처럼 흐른다. 그것들은 잡을 수도 없고 멀리 보낼 수도 없지만 나는 그릇이 차고 넘칠 때까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주는 갖가지 감정들, 마음들을 보고 있다. 그곳에 물론 나는 없다.
변호사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삶에 필연적으로 관여하지만 사건이 끝나면서 그 역할도 끝이 난다. 만약 좋은 결과가 있다면 함께 즐거워하고 좋지 않은 결과에는 함께 아쉬워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 한정적인 역할로만 남게 된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모든 것이 끝난 후 언젠가 친구처럼 커피를 한 잔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건의 사건을 맡아 하더라도 그런 일은 실제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 끝나면 의뢰인의 기억에서 변호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변호사란 직업이 무척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도움을 주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연관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역시 모든지 멀리서 봐야 가장 잘 보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