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나는 작년 초 남양주 법률사무소 봄을 만들고 개업 변호사가 된 이후, 바로 남양주 지원 민사 · 가사 조정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초창기 남양주 지원에는 약 100명의 민사조정위원과 20명 남짓의 가사조정위원이 있었는데 조정 건수는 이혼조정이 압도적으로 많아 가사조정위원만 있었던 1조의 조정위원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법원에 나가 이혼조정사건의 조정위원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이런 연유로 나는 작년부터 한 달에 두 번 정도 조정위원으로서 이혼조정사건에 참여하였고, 이혼 조정의 대리인으로도 많은 이혼 사건을 경험하였다. 개업 초 우연히 sbs bis '행복한 이혼'편에 이혼전문변호사로 출연하기도 하여, 그야말로 다양한 이혼 상담을 진행했다. 많은 상담을 진행했지만 사연은 각자 다르더라도 이혼의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부부들이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이혼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의외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돈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수백 건의 이혼 사건을 상담하면서 느낀 것은 이혼은 역시 '사랑이 완전히 없어진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랑이 남아 있는 경우, 배우자가 자산을 탕진하거나 가정에 소홀하거나 심지어 한 번의 외도를 한다고 해서 이혼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에서 배우자가 자산을 탕진하거나 가정에 소홀하거나 외도를 하면 바로 이혼을 마음먹는다.
어느 늦은 밤, 법률사무소 봄을 찾아온 의뢰인은 아직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다. 그녀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 남편과는 2년 전부터 주말부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혼을 요구했다. 이미 결혼 생활이 8년에 이르렀기에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자신이 이혼을 할 거란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남편이 이혼을 얼마나 강력하게 요구하는지 그녀는 너무 질려서 오만 정이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그녀 주위에 많은 사람들(특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남편의 외도를 의심했지만, 그녀로서는 남편과 이미 2년 동안이나 주말부부를 하고 있었던 통에 심증 외에 어떤 증거도 알아낼 수 없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 여자가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는 더 이상 남편과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빠른 이혼을 원했기에, 그들은 가장 신속하고 깔끔한 방법인 이혼 조정으로 이혼을 진행하기로 했다. 남편은 필요하면 그녀의 변호사 비용까지 자신이 부담한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찾아와 상담을 하면서 몇 번이나 하염없이 울었다. 이런 경우에 나로서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기 어렵다.
나는 때때로 정말로 이혼 결심이 서지 않은 분들이 상담을 하러 와서 눈물을 보이거나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돌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의사가 너무나도 굳건하고 강경한 경우에는 결국 그의 의지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그(또는 그녀)는 그렇게 원하던 이혼을 하면 언젠가 후회를 하게 될까?
나는 몇 달 후, 이혼 조정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조정은 여러 가지를 정하기 위해 생각보다 오랜 시간 진행이 되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아 할 때는 그녀 대신 그녀의 대리인인 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날을 지금껏 간절히 기다렸던 것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나의 의뢰인인 그녀는 말없이 내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왜 이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의 이야기만 듣던 내가 그를 직접 대면하고 느낀 것은 이런 것이다.
그의 마음은 여기에 없다. 그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떠난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는가? 내가 그녀라도 무조건적으로 헤어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냉정하게 마음먹도록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가 그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혼을 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를 하지 않는다. 우선은 이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결혼과 같이 이혼 또한 이미 내려진 결정인데 후회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또한 이혼을 마음먹은 쪽에서는 더더욱 자신이 내린 결정이기에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혼을 갑자기 받아들인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처음에는 괴롭지만 어찌 되었든 이혼까지 가게 된 과정에서는 분명 '사랑의 부재(不在)'가 존재하기에, 이 상황을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가 들어 이혼을 한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나이가 들어 이혼을 하게 되면 남자만 불리하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것은 물론 사랑이 아닌 현실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지금 상황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 이혼을 결심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분명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배우자와 자녀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기에 아이의 이유로 이혼을 하지 않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 만약 아이의 이유로 이혼을 망설인다면 그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본질적으로는 이혼 자체를 망설이고 있는 경우일 것이다.